▲ 설천면 양봉호 씨
70년대, 양봉호 씨(56)는 통영 굴 양식장에서 일했다. 굴과의 질긴 인연이 시작됐다. 80년대, 설천면으로 돌아온 그는 품삯 대신 양식장 한 쪽을 빌려 굴양식 자영업자가 됐다.

90년, 양 씨는 5핵타(1핵타=100m×100m)의 굴양식을 하면서 연 1억 원 정도의 수입을 올렸다.

2000년대 들어 굴이 이상해졌다. 2002~3년 태풍 루사와 매미로 인한 남강댐 집중 방류로 굴 폐사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을 겨울 갈수기 때는 민물이 줄어 플랑크톤 공급이 안돼 굴 속이 꽉꽉 차질 않았다.

양봉호 씨의 빚은 현재 2억 원 정도다.

약 40년, 양봉호 씨가 굴양식을 해온 경험과 지식은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알고 있는 대로 했다간 ‘남강댐 방류’라는 초대형 악재나 이미 변한 환경 때문에 크게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민물이 필요한 시기에 남강댐은 물을 가둬버렸고 적정한 육지물이 흘러들어야할 때 집중 방류를 해버려 재앙을 발생시켜왔다.

“강진만은 맑은 빛깔이 정상이지만 민물 양에 따라 색깔이 흑색으로 또는 붉은빛으로 변한다. 황조, 적조란 거다. 이 악성 조류를 굴이 먹으면 살이 붉거나 검게 돼 버린다. 수출도 안 된다. 시장에 낼 수도 없다.”

양봉호 씨는 평범한 남해의 굴양식업자였다. 이런 그가 하동화력에 오염 문제를 거론하고 남강댐 방류로 인한 피해와 남강댐 수위 상승에 반대하며 집회에 참가하거나 ‘반대’를 외치는 상황은 분명 비정상적이다. 남강댐 수위상승은 결국 양봉호 씨와 같은 어민에게 치명적 결과,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게 뻔하다.

설천면에 정착을 했을 때 15만 원쯤 월급을 받던 시기, 양봉호 씨는 돈을 받지 않는 대신 어장을 빌려 자기사업을 시작한 이 시대의 서민이었다. 남강댐으로 인한 피해는 그의 생계와 직결된 삶의 문제가 된다. 2000년 들어 거의 10년 동안 30여명의 양식업자 중 5~6명이 굴 생산을 포기해 버렸다.

“지금은 갈수기다. 댐이 물을 막아버려 플랑크톤 공급이 안 돼 굴 속이 차질 않았다. 김장철 출하시기를 놓쳤다. 출하시기를 놓치면 30%의 손해를 보게 된다. 11월 말부터 수확해야 하지만 굴 성장이 늦어져 12월20일부터 수확을 하고 있다.”

남강댐의 집중 방류와 함께 물을 가두는 것도 어민들에겐 직접 피해로 다가와 있었다. 남강댐 수위 상승 후 부산 물 공급과 강진만 황폐화의 예측은 비례하며 현실화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비용과 물가, 인건비 등은 가파르게 증가했지만 80년대 굴 값은 지금의 굴 값과 거의 비슷하다.”

양봉호 씨는 1년을 양식업에 투자하고 한철 수확해 생계를 꾸리는 어부다. “지금 시기에 수확해 빌린 돈을 갚아야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으면 이자만 갚으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빚은 먼저 말했지만 2억 원 정도다.

최근엔 호흡이 거칠어졌고 ‘심장’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내년에 “좋은 일이 있을 기라 보고!!”라고 웃고 만다. “굴을 많이 먹어 피부가 좋다”고 말하는 그다. 2000년 이후 그는 환경의 최고 피해자 중 1명이다. 털털 웃는 그가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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