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감하며 그간 출장 다닌 곳을 헤어보니 35개 국가 42개 도시를 방문했다. 지구를 열 바퀴는 넘게 돌았을 거리이다. 미국, 유럽 등과 같은 선진국에서부터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등의 후진국까지 안 다닌 곳이 없다. 방문지에 가면 빠짐없이 그 나라 산업, 항만시설 등을 돌아보기도 하고 기업인, 정부 관계자, 재외 교민 등을 만나 그 나라 정치경제상황, 시장의 흐름 등을 점검했다.

그런 경험을 살려서 올 해를 평가하면 ‘국가간 지각변동이 극심했던 해’, ‘국가의 흥망성쇠가 뚜렷했던 해’였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지각변동의 가장 큰 특징은 ‘경제대국들의 굴욕’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이다. 작년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 경제를 뒤흔들게 되었다. 그로 인해 전 세계의 사람들은 방탕한 미국의 금융계에 대해 비난의 시선을 아직도 거두지 않고 있다. 미국 스스로도 돌아온 ‘탐욕의 부메랑’으로 인해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다. 올 해 경제성장률은 -2.5%이고 내년에는 겨우 2%를 넘어설 것으로 추측된다. 실업율은 작년에 5.8%였던 것이 올해 10%를 넘어섰고 내년에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초라한 신세가 된 것은 미국 뿐 만이 아니다. 유럽과 일본 등 다른 경제대국도 마찬가지이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각각 -4.2%, -5.6%에나 달할 정도로 심각하게 경제가 뒷걸음질을 쳤다.

한편으로 ‘열등생이 된 우등생’의 국가들도 있다.
아이슬란드와 같은 나라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불을 넘었던 나라가 지금은 국가부도를 맞았다. 한마디로 국가의 빚이 많아 갚을 수 없다고 파산선언을 한 것이다. 국가부도로 인해 물가가 100%나 급등하고 국민들에 대한 세 부담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심지어 가계 빚이 급속도로 늘어나 3대가 지나도 갚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우등생’이라고 칭찬받던 아이슬란드가 이제는 불명예스럽게도 ‘지구촌의 문제아’가 된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위태위태한 나라가 그리스이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112.6%이고 2011년에는 135.4%까지 늘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그리스 정부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공공부문의 지출을 확대하지 말라는 EU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EU의 권고치보다 4배나 많은 지출을 함으로 인해 국가부도사태의 목전에까지 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적 위기 속에서 멋진 성장을 한 ‘스타 군단’이 있다.
바로 친디아(CHINDIA, 중국과 인도를 의미),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의 신흥국이다. 역시 가장  두드러진 성장을 한 나라는 중국이다.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올 해 경제성장률이 8.3%에나 달했으며 내년에는 거의 10%대에 가까운 성장을 할 것으로 보인다. 2008년 10월을 기점으로 일본을 제치고 對美 최대의 채권국가로 되었으며 명목 GDP 세계 3위(구매력 기준 2위), 교역액 세계 2위, 외환보유액 세계 1위 등 무서운 성장을 하고 있다. 12억에 달하는 인구를 가진 거대한 인도 역시 올 해 성장률이 6.5%이고 내년에는 7.1%에나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대국이 비틀거리는 틈을 타서 신흥국이 그 자리를 꿰차려는 것이다.
 
작년에 시작된 금융위기 이후 쇠락한 국가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가정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쇠락한 국가는 ‘방탕함’, ‘잘못된 지도자’, ‘비판의식 없는 국민’이라는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금융계의 방탕한 욕망과 금융당국(정부, 지도자)의 방관이 어우러져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아이슬란드와 그리스의 경우에는 정부의 잘못된 재정관리로 인해 나라가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국민들도 아무런 비판 없이 정부가 푸는 돈이 빚이라는 생각도 없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다가 결국 후대에까지 빚을 물려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국제사회는 우리나라를 금융위기로부터 가장 빨리 탈출한 ‘모범생’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경인년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년의 국내외적 상황이 그렇게 녹록치는 않을 듯하다. 내년은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자칫하면 대일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북한의 핵문제와 권력이양문제 등으로 인해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할 수도 있다. 국내적으로도 아직 노사갈등, 여야대립 등 고질적인 후진적 문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지역의 대표자를 뽑는 지방선거를 맞이한다. 어떤 인물을 뽑는가에 따라 국운(國運)과 가운(家運)이 좌우될 것이다. 올 한 해 동안 쇠락해갔던 나라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민의 냉철한 비판의식과 올바른 잣대를 통해서 능력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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