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없는 무덤 없다’라는 속담처럼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사연이 있겠지만 이연자 씨(가명·56·사진왼쪽)에게는 2009년 한 해가 특별하다.
올해 끝자락인 12월 27일, 슬하에 2명의 자녀를 둔 남해평리주공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아파트는 10평 남짓으로 전에 살던 집보다는 협소하지만 위 사진에서처럼 그들이 기뻐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다.
이 씨는 30여 년 전, 7살 아들과 함께 한집안의 차남과 재혼, 이동면에서 살았다.
당시 이 씨가 살던 곳은 장남 앞으로 소유권이 있긴 했지만, 장남은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이 씨는 남편과 부모님을 모시며 그 집에서 살았다.
농촌 정서상 땅이나 집의 소유권을 장남 앞으로 해 놓는 것은 흔한 일인지라 그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 씨의 남편과 시아주버님이 세상을 등진 2008년, 서울에서 생활하던 시아주버님의 아내인 손위 동서가 집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왔다.
‘사던지 나가던지 해라’는 손위 동서의 말에 차상위 계층이라는 어려운 형편을 차치하고라도 그간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고 벌초는 물론 집안의 대소사를 맡아했던 차남의 아내로서 참으로 황당했다.
이 씨는 황당하고 억울한 자신의 심정을 본지에 호소해 지난해 8월 그의 사연이 보도됐다.
이 후 집안의 일을 퍼뜨렸다며 이 씨는 시댁사람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한 시댁식구는 ‘입을 닫고 있었으면 새집 전세금이라도 보태어 주려 했는데’라며 이 씨를 성토했고, 손위 동서는 내용증명편지 발송에 이어 법원에 조정신청을 했다.
때마침 남해읍에 주공아파트가 들어서고 입주 신청이 시작돼 이 씨는 입주신청을 했다.
다행히 당첨이 돼, 손위 동서에게 입주가 12월에 있을 예정이라 그때 까지만 기다려 주면 집을 비워주겠다고 했지만 거절당했고 지난 7월경 법원의 조정신청에 출석을 통보받았다.
법원에는 관절염으로 장애판정을 받아 거동이 불편한 이 씨를 대신해 그의 아들이 출석했다.
손위 동서는 이 씨 아들에게 ‘벌초 좀 하고 부모님 좀 모시고 산 게 뭐 그리 대수냐. 또 친 아들도 아니다’ 등의 언사를 했지만, 법원은 결국 이 씨가 주공아파트로 이사하는 12월까지 이동면의 집에 거주하는 것으로 조정판결을 내렸다.
이러한 일들을 겪은 만큼 주공아파트 입주가 기쁠 수밖에 없는 이 씨와 가족들이었지만, 이사 당일 수 십 년 간 살며 정들었던 집을 뒤로 할 때는 너무 씁쓸했다고 한다.
이 씨는 “여름철 비가 조금이라도 많이 오면 집에 물이 들어와 고생도 많이 했지만 남편과 부모님과 함께 살아온 터전을 막상 떠나려니 참으로 섭섭했다”고 소회를 전하며 “이렇게 좋은 삶의 터전을 마련해 준 모든 분들과 가구와 가전제품을 마련해 준 친정식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번 일을 통해 희망을 갖고 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 어려운 형편에서 생활하시는 분들 힘을 내시길 바란다. 또한 내년 2010년에는 많은 군민들이 좋은 일로 웃을 수 있는, 행복한 남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