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 고맙게도 필자 칼럼을 읽어 주시는 분들이 몇 분 계신다. 내용이 좋아서라기보다 아는 안면에 봐 주시는 모양이다. 그래도 가끔씩 만나면 칼럼 내용에 관해 이런 저런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고 물어 오기도 한다. 이런 몇 몇 독자들이 문의를 해 왔다. 대충의 질문 내용들은 이런 것이다.
 “서울대를 없앤다는 것 자체도 황당하고 쉬운 일도 아닐 터 이지만,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면 도대체 얼마만큼의 큰 변화 발전이 있단 말이오?”
또 이 곳 설천에 와서 사귄 이들 중에 같은 해 태어났기에 갑장 친구가 된 좋은 벗이 있는데, 이 친구는 ‘어렵지 않게, 읽기 쉽게 글을 써 달라’는 매우 어려운 당부도 했다. 
 쉽게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문예에 내공이 깊지 않은 필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옳은 이야기이다. 특히 무거운 주제일수록 가볍게 접근하는 것이 쓰는 사람이나 읽어 주는 사람에게나 마음이 편할 것이다. 
 그래서 이 주제에 관해 지면이 허락하는 한 가벼운 마음으로 한 꼭지 씩 적어 볼 요량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대학 교육의 정상화’이다.

 조금 이야기를 둘러 가 보자.
고등학교 다닐 때 이야기이다. 당시 체력 검사의 일환으로 오래달리기가 있었다. 2km를 뛰어야 했는데 학교 운동장을 5바퀴를 돌아야 하는 검사였다. 한꺼번에 30명이 달렸는데 그 나이 때 다 그렇듯이 은근히 경쟁심이 생겼다. 등수를 매기는 육상경기도 아닌데 뛰다보니 시합 아닌 시합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제법 서로 견제도 하면서 뛰고 있는데 어느덧 선두 그룹에 속하게 되면서 은근히 욕심이 생겼다. 기왕에 승부를 내겠다면 1등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생기더란 이야기인데, 드디어 마지막 바퀴가 되자 나는 그동안 모아 두었던 힘을 다 써서 스퍼트를 시작했다. 내가 뛰기 시작하자 의외로 다른 친구들이 따라오지 못해서 한 20여m 정도를 앞서 골인 점을 향해 달렸다. 드디어 결승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결승점에 있던 친구가 손가락을 하나 높이 세우면서,
 “힘내라! 이제 마지막 한 바퀴 남았다.”   
아뿔싸, 4바퀴째인데 착각하여 마지막 바퀴인줄 알고 스퍼트를 한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나를 따라 같이 맹렬히 달리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후회해 본들 어쩔 수 없고 체력이 소진한 상태에서 그렇게 마지막 바퀴를 돌았는데 마치고나니 하늘이 노래지는 것이 그야말로 거의 죽을 뻔 했다.   

 느닷없이 오래 된 ‘오래 달리기’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바로 우리나라 교육 현실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현실적 교육과정은 그 때의 오래달리기와 비슷하다. 5바퀴를 다 돌아야 완주가 되는데 마치 4바퀴 밖에 없는 것 마냥 마구 내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나라 교육을 이야기 하면 교육의 문제가 마치 대학입시에 몽땅 달려 있는 것 같다. 아이나 부모나 할 것 없이 마치 대학입시가 인생을 결정하는 것 같이 대든다. 그래서 대학 입시를 향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돌진하다가 대학입시가 마치면 나름대로 입시에 성공한 학생이나 학부모는 한시름 놓고, 또한 실패한 사람은 실의에 빠져 버린다. 어찌하였던 간에 성공한 사람이나 실패한 사람이나 교육에 대해서 손을 놓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실제로 제대로 된 공부는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초, 중, 고등학교 교육과정인 보통 교육 과정은 그야말로 준비하는 과정이다. 대학을 위해, 혹은 사회 진출을 위한 준비 과정이지 결코 마무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스개 소리로 대한민국 국민들은 세 가지 분야에 있어서는 다 전문가라고 한다. 정치, 건강 그리고 하나는 바로 교육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다 들 이 세 분야에 관해서만은 제각기 일가견을 지니고 있다는 것인데, 교육 분야에 들어가면 대학 입시 까지는 입에 거품을 물고 식견을 과시하지만, 막상 인생살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대학 교육에 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고등학교 때 아무리 공부를 잘 해도 대학에서 멍하니 세월을 보내 버리면 말짱 도루묵이 되어 버리는 것인데도 별 관심이 없는 것이다.

 뜻있는 많은 대학교수들이 대학 교육의 부실해 지고, 황폐화 한다고 심각하게 우려 하고 있다. 경제 규모론 세계 8위니 뭐니 하고 자랑하지만 대학 수준으론 매년 세계 100위 안에 들어가는 대학이 하나 있는 둥 마는 둥 한다. 대학 교육 수준은 그야말로 후진국이란 것이다. 대한민국의 저력은 교육에서 나온다고 해 왔는데, 이 대로 가면 앞길은 뻔하다. 이런 한심한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걱정들은 대학 울타리를 넘어 가지 않는다. 왜냐면 학부모인 국민들이 대학 교육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학생이나 학부모 탓을 해서는 안 된다. 정작 마지막 결승점을 앞둔 한 바퀴가 남아 있는지를 모르고 네 바퀴째에 죽자고 뛰어 버려서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이니까. 우리나라 교육이 마치 소싯적의 바퀴수를 잘 못 헤아려 죽을 고생을 한 바보 같은 내 모습과 그대로 닮아있지 않는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나와 있다. 제대로 5바퀴를 완주해야 하고 마지막 한 바퀴는 전력 질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이란 경주에서 결승점은 대입이 아니라 대학 졸업 시점으로 맞추어 져야 한다. 그래야 정말 밤 세워 가면서 대학에서 온 열정을 기울러 학문을 도야해야 제대로 된 대학 공부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과도한 경쟁 구도를 대폭 완화시키면 되는 것이다.
지난 번 칼럼에서 대한민국의 모든 국립, 공립 대학을 통합하여 서울대로 재편하자고 했었다. 이러면 입시생의 1/4 정도가 서울대에 진학을 하게 된다고도 했다. 그런데 자세히 통계를 살펴보니 금년도 수능 수험생이 68만여 명인데 국립대 총 입학 정원이 20만 명이 넘는다. 어느 정도 재수를 한다고 보면 얼추 1/3이 국립대(서울대)에 입학을 하는 셈이 된다.
이렇게 서울대 입학생 규모를 대폭 늘리면 경쟁률 역시 대폭 낮아지게 되어 있다. 죽자고 하지 않아도 서울대 입학이 되는데 왜 목숨 걸고 대학 입시 공부 하겠는가? 오래 달리기에 5바퀴 째 달리기가 남아 있는데 누가 4바퀴째에서 스퍼트를 하겠는가 말이다.

 이렇게 서울대의 문턱이 낮아지게 되면 다른 이른바 명문 사립대학의 경쟁 정도도 떨어지게 된다. 아무리해도 서울대를 앞지르는 사립대가 현재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니까.
이렇게 전반적으로 대학 입시 경쟁 구도가 완화되면 자연히 사교육 시장에 아이들이 기웃거릴 필요가 없어 질 것이다. 보통 교육 과정에서는 심신을 단련하고 다양한 체험도 해 보고, 봉사 활동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하면서 그야말로 유년기에는 천진난만한 어린애답게 청소년기에는 꿈 많은 학생들로 제 자리를 잡게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틀을 보통 교육 과정에서 잡고 대학에 와서는 정말 큰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게 해야 대학 교육이 정상화 되고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가 앞으로의 세계로 뻗어나가는 재산이 되는 것이다. 이 길의 첫 단추는 ‘서울대 없애기’에서부터 시작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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