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이라고 해야 할까. 위스키, 와인, 맥주 등에 밀려 한없이 천대받던 막걸리가 이제는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심지어 우리 대통령이 다른 나라 정상과 식사를 할 때 공식 건배주로 사용한다. 그리고 막걸리를 세계화하겠다고 한다. 마치 계모와 팥쥐에 구박받다가 고을의 원님과 결혼해 행복하게 살게 된 콩쥐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사람들은 입냄새 많이 나고 다음날 숙취가 심해 거부했던 막걸리에 푹 빠진 것일까.
 필자는 그것을 막걸리의 진화 때문이라고 본다. 막걸리는 콩쥐처럼 심성이 고와 사람들의 몸에 좋다. 쌀로 만들었고 발효시킨 곡주다 보니 기본적으로 웰빙음식이다. 알콜을 제외하고 나면 단백질, 탄수화물, 칼슘, 인 등 인체에 필요한 것은 대부분 들어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숙취를 유발하는 성분을 최대한 제거해서 사람들의 거부감까지 없앴다. 게다가 마늘, 오가피, 복분자 등 소비자의 기호에 맞추어 다양한 제품의 막걸리가 개발되었다. 이것이 막걸리의 성공요인이다.

 필자 역시 요즘 막걸리에 푹 빠져 있다. 특히 고향사람들과 만나는 향우회 행사에서는 되도록 막걸리를 마신다. 그래야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이 제대로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걸리에 비해 향우회 행사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막걸리의 진화처럼 남해사회와 향우회의 유기적 결합을 기대한다.
 
#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향우회 행사에 가보면 고향의 면별, 부락별로 향우회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만들어져 있다. 우리의 과거를 아주 잘 조직한 것이다. 필자 역시 향우의 한 사람으로서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여기에 머무르면 향우회는 성장하지 못한다.
향우회에 몸담고 있는 향우들의 삶의 기반은 도시이다. 그곳은 향우들의 현재와 미래다. 그런 면에서 향우회의 조직구조는 고향의 마을 단위에서 나아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더욱 세분화, 조직화 되어야 한다. 가능하면 구별, 동별로 향우회를 결성해 그 지역 현안에도 참여해야 한다. 부산만 하더라도 40만 향우라고 한다. 부산인구가 350만 정도이니 적어도 열 명 중에 한 명은 남해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남해인을 대표할 수 있는 구의원, 시의원도 제대로 양성하지 못하고 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향우회가 잘 된다는 것은 과거의 경험을 공유한 조직이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향우들이 살고 있는 그 도시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미래형의 조직형태를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 돈이 아니라 사람이다.

향우회의 정기총회, 골프대회, 송년회 등 각종 행사에 참석하다 보면 참 많은 돈이 들었다는 생각을 한다. 한 행사에 몇 천 만원이 들어갈 때가 있다. 면별, 부락별로 들어간 돈까지 합산을 하면 1년에 적어도 억대의 돈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만큼 향우들의 고향사랑과 자부심은 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추억을 더듬는 것이다. 앞으로는 행사를 위해 돈을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조직했으면 한다. 즉, 출향인사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남해의 자산은 사람이다. 남해가 보물섬인 이유는 물적 자원이 많아서가 아니라 능력있는 인적 자원이 많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 문화, 체육계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출향인사들을 향우회 행사 때 축사하는 용도로 활용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남해군의 역할도 중요하다. 일상적 시기에 여러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출향인사를 각 분야별로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남해에 어떤 현안이 발생했을 때 그 출향인사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 
 
# 어른이 아니라 청소년이다.

고향 남해에 폐교가 늘어가고 있다. 평균연령도 갈수록 높아진다. 도시로 젊은층이 유출되어 나가기 때문이다. 반면에 도시에 살고 있는 향우들의 자녀는 고향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지고 있다. 이 두 가지 현상이 오래 지속되면 향우회도 언젠가는 지리멸렬해 질 것이고 고향 남해 역시 활기를 잃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남해에 살고 있는 사람이나 도시에 있는 향우들은 어른이 아니라 청소년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남해신문과 남해군청에서 청소년을 위한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해 주기를 기대한다. 도시에서 나름대로 업적을 이룬 출향인사를 초청하여 남해에 있는 청소년에게 강연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비록 열악한 조건이지만 꿈과 목표의식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으로 도시에 살고 있는 향우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하여 고향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부모가 살았던 고향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잘만 조직되면 우리의 청소년이 어디에서 태어나건 간에 한국사회에 기여할 인물도 탄생하게 되고 고향에 대한 애향심도 생길 것이다.

필자는 과거를 먹고 사는 사람과 조직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을 믿는다.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고령화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고향 남해가 다시 성장하기 위해서는 남해군과 도시의 향우회가 전략적인 계획을 가지고 미래에 대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성권(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상임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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