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등대 푸른 파도를 품은 소치도의 그 도도함이란....
마을주민에겐 밀감밭의 추억, 지금은 탱자밭, 띠섬은 그랬다
안을듯 팔을 벌린 모래 해변의 사도, 딱 며칠만 빌렸으면....
죽암도 암벽 비탈에 선 동백나무의 아름다움은 해풍이 알고
숲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숲으로가는 미조도 산책로의 정겨움이란.... 

무인도 탐방

소치도....띠섬....사도....죽암도....미조도, 그리고 남해군의 크고 작은 73곳의 ‘사람이 살지 않는 섬’,? 이 기발하고 황홀한 섬에 아직 찾지 못한 보물이 있음을 알았다.
빼어난 무인도들은 남해 바다에서 제각각 한 점 절정의 마침표로 떠 있었다.

▶132개의 가파른 계단 그리고 등대
가파른 바위를 이어 만든 소치도 132계단은 ‘뜨악’한 공포를 안겼다. 경사도 경사지만 평소 운동량이 부족한 이들에겐 후들거리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132계단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오르고 내리며 세었던 게 소치도 계단의 수였다.


미조에서 어업지도선을 타고 한 5분, 소치도는 가파른 절벽에 고깔모자 같은 등대를 쓰고 있었다. 태양광을 이용하는 하얀 등대는 섬 중턱에 세워져 있고 저 푸른 바다와 대비되면서 보는 이를 ‘짜아’한 느낌으로 몰아갔다. 육지와 가깝지만 사람을 품어안을 듯 인심 좋은 자태는 아니었고 튕기듯 도도한 자세로 팔짱을 낀 아가씨 같았다.

계단을 오를 수록 뒤로 펼쳐진 절경에 가슴은 ‘쿵당’였고 어느새 압도되는 듯했다.
멀리 3만톤급이나 될만한 유조선이 일엽편주로 떠 있고 가는 바람에 떨어지는 소치도의 잎새도 드물지만 보였다.

날이 흐렸는데 소치도에서 아슴아슴하게 보이는 작은 섬을 남해군 최남단 “세존도”라 했다. 상주면에서 직선거리로 무려 26km쯤 된단다. 배를 타고 3시간 정도를 가야한다는 세존도는 석가세존이 도를 깨친 뒤 돌로 만든 배로 섬을 뚫고 지나갔다는 전설, 그곳을 향해 빌면 끝내 소원 하나는 들어준다 ‘약발’있는 섬이라 했다.


▶무인도 밀감밭은 탱자밭이 되고
배에 오르면 도통 방향을 알 수 없는 항해에 몸을 맡겼다는 느낌이 강했다. 날씨 탓에 희미하게 해가 보이면 그곳이 ‘서쪽’이었다. 나침반의 발명이 왜 위대한지 실감나는 경험이었다.
일행 중 “이쪽이 상주해수욕장, 저쪽이 송정해수욕장”이란 말에 어렴풋이 위치를 짐작할 뿐 ‘띠섬’ ‘혹도’ ‘혹섬’으로 불리는 섬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귀동냥했다. 망망대해를 떠도는 느낌이랄까. ‘나의 위캄, ‘존재’ 같은 시시콜콜한 물음이 속에서 울려왔다.


간간히 등이 휠 듯 튀어오르는 ‘정갱이’들이 있었다.
영산강 환경구역청 해파리 모니터링요원인 이연식 씨(53)는 “띠섬엔 정갱이가 많이 잡힙니다. 딱 이만한 것”이라고 했다. 얼추 20cm정도의 크기를 그는 손으로 그려냈다.
띠섬은 완만한 경사지와 가파른 절벽 리드미컬한 해안선 등이 있는 섬이었다. 슬라브 2층 폐가가 있었고 내부는 염소똥이 지천이었다.


“어릴 때 이곳에 밀감 서리를 하러 왔다가 벌을 섰지요.”
얼핏 듣기론 안내를 맡은 미조면 설리 김덕봉 이장(52)의 말 같았다. 그는 섬의 내력을 아는 역사가였고 완벽한 해설사 였다. 말을 할 때마다 귀를 쫑긋거리게 하는 ‘빨림’같은 게 그에게는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밭으로 쓰인 듯한 경사지가 나왔고 “30년 이상 방캇됐다는 밀감 밭은 탱자 밭으로 변해 있었다.


“1000주가량의 밀감나무가 있었다”는 그의 말, “이 섬은 9명의 공동 소유로 팔 것”이란 설명, “경남도의 남해안 프로젝트에 따라 구름다리가 놓일 것으로 알고 있다”는 소식까지, 그는 띠섬의 ‘빠삭 박식’한 전문가였다.


섬 등성이를 따라 가는 평평한 길은 아찔할 정도의 낭떠러지 옆이었고 사방을 둘러봐도 아찔한 외모를 가진 절색이었다. 띠섬과 옆의 작은 바위섬에 부딪히는 파도, 섬과 바다와 하늘이 만들어내는 삼위일체의 조화, 낚시꾼들이 만들어내는 풍경 등 띠섬은 폭발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둥둥 뜬 해파리 수에 기가 질리다
사도(뱀섬)로 들어서는 바다 위로 낙하산처럼 둥둥 떠다니는 희멀건 괴물은 ‘해파리’였다.
이 바다생물은 그 개체수에 있어 인간을 압도하고 있었다. 어민들을 통곡하게 만든 이 희멀건 생명체는 푸른바다와 대비돼 너무도 또렷하게 보여 왔다. 헤엄치는 힘이 약해 수면을 떠도는 해파리는 어업지도선의 스쿠루 프로펠러에 치어 튕겨나가고 배 옆을 지나고 배 앞을 어슬렁댔다.


그래도 생명인데 싶지만 그 수만큼은 기 질리게 했다. 해파리는 이미 남해바다를 점유해 가고 있는 듯 보였다.
해파리가 있든 없든 배는 사도로 향했다. 해송, 사스레피나무, 광나무 숲으로 울창한 이곳엔 박새 너구리의 배설물이 확인되기도 했다.


사도는 50m쯤 될만한 작은 모래 해변을 가진 로맨틱한 섬이었다. 모습이 애처롭기도 했고 한가롭기도 했다. 서너 가족이 놀다갈 만한 면적의 해변엔 찾는 이도 드문, 말 그대로 무인도였다. 여름 한 철 딱 며칠 빌렸으면 좋겠다는 현실적인 생각도 해봤음이다.
쌀쌀해지면서 사도를 비롯한 인근 섬들은 ‘감성돔’ 조황이 좋아지고 조황은 겨울까지 이어져 포인트 낚시로 제격인 모양이었다.
해안을 거닐었을 뿐 오래 있지는 않았다.


▶절제된 아름다움 그리고 염소들의 나라
동쪽을 가리키는 누군가의 손끝에 희미하게 인근 도시 통영이 걸렸다. 죽암도 내리자마자 낚시 미끼로 썼을 크릴새우 찌꺼기가 바짝 마른 채 벌겋게 널려 있어 지저분해 뵜다.
볼만한 경치는 섬을 향해 내려꽂은 듯한 거대한 바위였다. 위에서 보면 천상 ‘뱃머리’였다.
“유명한 포인터 낚시 지졈이란 말을 들었고 섬 몇 군데 자리잡은 낚시꾼들은 날 저문 판에도 정신없이 낚싯대를 휘둘러 댔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가팔랐다. 염소는 여기 죽암도에도 많은지 곳곳에 염소똥이었고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섬 중간 쯤 5마리의 염소가 경계하듯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섬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염소는 열매를 먹고 씨앗을 옮기는 그들 고유의 생태적 역할만은 제대로 해내고 있었다.


100m는 족히 될 낭떠러지는 삐죽삐죽 튀어나온 바위와 파도와 엉겨 또한번 질릴 듯한 절경을 만들어 냈다. 아슬아슬한 비탈에서 용케 살아남은 동백나무의 절제된 모양이라든지, 텅빈 암벽에 아무 것도 없는 여백 같은 것, 분재를 한 듯한 소나무의 기형적인 모양도 이 섬을 설명하는 해설사였다.


이 장면을 해설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카메라로 찍고 휴대폰으로 찍은 뒤 문자를 마구 날려댔다. “그게 남해라고? 멋지다” “남해 이사나 갈테니 기다려” 등등의 답장이 쏟아져 들었다.


‘무인도는 감성을 자극하는 특정한 키워드 중 하나가 아닐까’ ‘찬사와 부러움뿐인 이런 반응은 오고 싶음을 뜻하는 방증은 아닐까’ 생각이 꼬리를 물다 사라졌다.


▶명당의 섬, 미완성의 섬
멀어지는 죽암도는 큰 거북이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목을 ‘쭉’ 뺀 모양 같았다. 풍수로 풀 때 거북 모양이면 꼬리쯤에 명당이 있을 거고 명당의 위치는 거북이 알을 낳는 자리쯤일 것이다. 반풍수적 짐작으론 죽암도 뒤쪽에 물고기가 많거나 어떤 ‘돈 벌이 포인트’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멸치는 수면 가까이에 떠 있습니다. 정갱이가 멸치를 잡아먹기 위해 펄쩍펄쩍 뛰는 겁니다. 저기 보이는 것들이.....”
곳곳에서 등 푸른 정갱이가 펄떡였고 그대로 내려 꽂혔다. 오후 5시~6시 사이의 일몰 때 정갱이들의 활동이 가장 왕성하다고 누군가 귀띔 했다.


어느새 해가 짧아졌음이 느껴졌고 오후 5시는 쌀쌀한 감이 있었다. 20노트, 최고 시속 40km정도로 미조도를 향하는 뱃길에서 “저기!”하는 소리에 일행들은 왼쪽 난간으로 일제히 몰렸다. 10마리 정도의 돌고래 떼가 그 유려한 선을 그리며 얽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생소한 경험임에 틀림없었다.


4시간의 뱃길과 섬 둘러보기는 지칠만한 여행이었다.
미조도는 여타 무인도에 비하면 제법 손이 간, 가꾸어진 섬이지만 미완성의 섬이었다. 물이 있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었다.
“섬 대부분을 모 재벌가가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숲길이 인상적이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자연림 속에 탱탱한 소나무가 기우뚱 휘청 줄을 섰고 오르막에 수 백 미터의 동백나무 숲길, 짧지만 단아한 종려나무 산책로는 ‘걷고 싶은 길’의 전형같았다.


산등성이를 따라 가게끔 만들어진 산책로는 섬 전체로 이어졌다. 많은 갈래 길들이 바다를 전망할 수 있는 곳까지 이어져 ‘숲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숲으로’란 근사한 콘셉트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길 끝에 투박하게 지어진 집이 한 채 있었다. 마치 어둔 숲속에 웅크리고 앉은 수행자의 은둔처 같았다. 집 앞에는 가죽나무가 30m이상 자라 있었고, 한켠으로 비껴서 있는 샘은?신비스러울 정도였다.
섬 관리인 박경영 씨(47)는 “남해물이 말라도 이곳은 마르지 않는다”며 샘물을 설명했고 물을 권했다.


물을 뜨는 도구가 자루를 끼운 플라스틱 ‘똥바가지’여서 우리 일행은 물을 마시면서도 껄껄대곤 했다.
무인도에서.....보물은 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보물을 찾을 지도가 아직 없다’는 생각, 여러번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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