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백휴양림에서 바라본 내산 저수지 
  

통나무집이 있는 휴양림주변에는 계곡을 낀 산책로가 단정하게 정비되어 있어서 한가하게 숲을 안고 걸으며 사색하기에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다. 물론 편백자연휴양림에서는 편백나무가 최고지만 편백을 제외한 다른 하나는 휴양림 바로 앞, 산이 물 속에 아랫도리를 깊이 묻고 있는 제법 큰 내산 저수지다. 저수지 모양도 긴 곡선으로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물의 맑기와 빛깔이 고단한 여행자의 마음을 씻기에 모자람이 없다. 예전에 그곳은 임야였거나 계곡이었는지 저수지 표면에는 말라죽은 나무들이 물 속에 그대로 뿌리를 박고 있어서 죽어서도 눕지 않은 고집을 보여주고 있다. 마른 갈대 무성한 길을 뚫고 내려가 물 속에 손을 담그니 단 1분도 버틸 수 없게 하는 시린 물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아무리 둘러봐도 고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고기가 없는 원인으로 너무 맑다는 것만을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면 그건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맑음과 차가움을 동시에 안고 있는 그만의 고독한 세계는 아니었을까. 너무 맑고 차가워서 누구도 함부로 다가서지 못하고 저만큼 물러나서 그저 신비롭게 바라만 보게 되는 삼동면 내산저수지.

  
 
  
편백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는 길
  


겨울 산이 하체를 묻고 있는 저수지에/이파리와 껍질을 버린 연약한 나무들이/물 속에 몸을 담그고 있다/한 시절 추위쯤이야 그렇다 하더라도/한결같은 포즈가 지겨워서라도/이제는 눕거나 아예 두 손을 들고/물 밖으로 나올 법도 한데 아직도 그대로다/죽어서도 살겠다는 저 고집은 누구도 어찌해 볼 수 없다
    - 詩 <내산리 저수지> 중에서 -
언제부턴가 저수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숲 언덕 위로 붉은 색 지붕 돔이 눈에 띄었는데 지난여름 다시 가보니 거의 마무리단계였다. 그 건물은 남해주민들의 숙원 사업인 나비생태공원이라고 했는데 나비생태공원이 문을 열면 내산리 편백휴양림은 정말 조용히 쉬고 싶은 사람들에게 휴식의 공간으로써 제 구실을 할 수 있을지 나는 지레 걱정이다. 원시림은 원시림 그대로 가치가 있는 것인데 과연 그것이 나비가 살고 있는 생태공원일지라도 일반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면 생태공원이 자연 친화적인 공원으로써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 지는 숙제다.  
휴양림에 도착한 첫날 무작정 바다를 찾아 동천, 양화금 방향으로 나가니 마을은 바다를 안고 구비치는 계곡 사이 어린아이가 어머니 젖가슴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렇게 정겹게 붙어있었다. 가다가 작은 방파제가 있는 가파른 바닷가로 내려서자 그때 막 바다에서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가두리 양식장으로 일을 나갔다 돌아오는 마을 사람들인 모양이다. 그들이 배에서 부린 것을 보니 금방 건져 올린 홍합이다. 그리 많은 양이 아니어서 팔려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게 짐작되었지만 그냥 스칠 수가 없어서 그것 조금 팔면 안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한 아주머니가 나를 향해 투박한 말투로 ‘이거 매우 비싼긴데요’ 그것이었다. 그래도 ‘조금만’이라고 하자 어디서 가져온 비닐 봉지 가득 홍합을 퍼주는 게 아닌가. 당연히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생각이었지만 아주머니는 뭘 이걸 가지고 돈이냐는 식이다. 나는 음료수라도 한 병 사드리고 싶었지만 아주머니는 어떤 대가도 사양했다. 마을 사람들을 실은 트럭이 가파를 언덕을 향해 올라가는 동안 나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또 했다. 그리고 마치 천만금을 횡재한 사람 마냥 기분이 좋아 실실 혼자 웃기도 했다. 
마을 앞 작은 방파제 위에 걸터앉아 들여다보는 바다는 투명하여 파도가 작은 물살을 가를 때마다 해초들이 몸을 살랑거리는 게 보였다. 남해 바다에 투영되는 것은 모두가 쪽빛의 자연이다. 그래, 남해엔 정말 자연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혼자말로 중얼거리는 동안 어둠이 내리고 바다마을을 지나 숲 속 통나무집으로 되돌아오니 숲은 더욱 깊고 은밀하게 나를 받아들였다. 다행이었다. 방은 군불을 지핀 시골 온돌방처럼 따뜻했고 열어둔 창문으로 편백나무 숲이 밤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보여주고 있었다. 통나무집 내부에 붙어있는 다락방은 어린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꿈을 꾸게 하는 방이 틀림없다. 늦은 저녁 좁은 나무 계단을 오르내리며 나는 그 숲에 잠시 빌린 내 것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 홍합봉지를 열어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다. 금방 바다에서 건져낸 것이니 청정해역의 싱싱함이 그대로 살아있는 귀한 것을 일부는 삶아서 먹고 옆 동에 누가 있다면 조금은 나누어주고 싶었으나 그럴 사람이 없어 아쉬웠다. 남은 홍합 때문에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아침에 일어나 저수지 주위를 산책하면서 밭둑 지천에 돋아난 냉이를 캤다. 홍합 삶은 물에 냉이를 손질해 넣고 양념이라곤 가게에서 한 주먹 얻어온 소금밖에는 없으니 맛을 낼 수 있는 건 오직 홍합과 소금이 전부였다. 그러나 홍합 삶은 물에 냉이를 넣고 끓여 맛을 보니 그 맛이 기가 막히다. 순하고 부드럽고 신선하고 시원하고 구수하고 향긋하기까지 하다. 홍합국 그것은 햇살 좋은 가을에나 먹을 수 있는 자연산 송이버섯국 뺨치는 맛이다.
나는 결국 돌아오는 마지막까지 첫날 얻은 홍합으로 홍합밥을 했고 냉이와 쑥 시금치 무 봄동과 풋마늘 등을 밭둑에서 뜯어다 국을 끓이고 죽을 끓여 뜻하지 않게 완벽한 자연식을 한 셈이다. 전원 생활에서 먹는 것으로 고민하지 않을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을 자연스럽게 실습한 것도 이번 남해 여행이 준 특별한 선물이다.

/김 인 자(시인·여행가)
http://www.isibada.pe.kr / kim8646@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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