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컬럼>‘바보 노무현’을 위한 변명
<발행인 컬럼>‘바보 노무현’을 위한 변명
  • 남해신문
  • 승인 2009.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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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정치사상 가장 실험적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노 전 대통령은 가난한 집안 살림 때문에 상고를 졸업한 뒤 진학을 포기하고 독학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이후 시국사건인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아 민주화 운동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88년 부산 동구에서 출마하여 강력한 후보였던 민자당의 허삼수씨를 꺾고 국회의원이 되었다. 5공청문회 스타라는 별칭을 받으며 화려한 의원생활을 했던 고인은 3당합당에 반대하여 나홀로 정치를 고수하다가, 민주당에 입당하여 부산시장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하면서도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맨땅에 헤딩하는 식의 도전을 감행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이 되었고 숱한 정치적 도전을 하고 임기를 마친 고인은 한동안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소탈한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결국 측근들과 가족들까지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는 상황에서 스스로 정치적 사형선고를 하고는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며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제는 누구나 아는 상식인 고인의 삶을 잠깐 되짚어보는 것은 고인이 실천하고자 했던 정치, 실현하고자 했던 사회가 무엇이었는지를 잠시나마 생각해 보고자 함이다. 정치적으로 찬성이든 반대이든 나라의 최고 책임자였던 인물의 죽음은 모두의 애도를 받을만한 사안이며 그의 삶을 한번쯤은 돌아보고 우리 역사에 던져주는 교훈을 생각해 보는 것이 상식적 사회의 도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고인이 된 이를 두고 조롱섞인 독설을 가하는 비상식적인 태도는 우리사회의 포용력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잠시나마 적대적인 마음은 접어두고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정치인 노무현은 많은 도전과 실험으로 무수한 도전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길을 고집했던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옳고 그름은 역사의 평가에 맡기더라도 그는 스스로의 고집스러운 면으로 인해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 대통령이 되고서는 이라크 파병으로 대표되는 각종 우경적 정책으로 자신의 지지기반이었던 진보개혁세력의 비판을 받았고, 4대개혁입법은 보수진영의 거센 저항을 받았다. 특히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주창하며 오히려 검찰의 미움을 샀고 보수언론과 ‘맞짱’을 뜨면서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진영과의 대연정을 제안하는 대목에서는 보수·진보 양측 모두의 조롱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뿌린 역사발전의 씨앗과 싹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는 당정 분리를 통해 1인 독재의 패거리정치가 아니라 시스템에 의한 정치를 시도했으며 사회 각층의 뿌리깊은 기득권을 대중에게 돌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그가 염두에 둔 시스템의 경험부족과 방향설정의 한계성으로 인해 대중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데는 실패했지만 그러한 노력은 한국의 정치가 발전하면서 열매를 맺을 시기가 다가 올 것이다. 이것은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치와 사회가 극복해야 할 문제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있는 며칠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최진실씨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두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 대통령이란 자리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최씨 역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하여 대중문화의 한 영역을 장식한 사람이다. 또한 톱스타의 자리에 오르고도 매니저의 죽음, 가정불화와 이혼,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 등에 얽혀 험난한 인생역정을 겪었다. 그때마다 좋은 드라마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며 대중의 찬사를 받았다. 그런 최씨 역시 자신을 억누르는 주변의 환경을 이기지 못해 자기 몸보다 더 사랑했던 두 아들딸을 남겨두고 세상을 하직했다.
필자는 지난해 10월 본지 컬럼에서 ‘최진실의 죽음과 시대’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썼다.
「이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합의를 통해 해결해야할 문제들을 자기편의 기득권과 이익을 위해 편향되게 몰아가는 현상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건의 본질에 관심을 둘 여유조차 없고 각자가 어느 편에 속해서 상대방을 갉아먹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이러한 비상식적인 논쟁의 구조속에서 이 사회, 남해라는 공간 속에서도 시대의 험산을 넘어왔던 이들이 제2의 최진실이 되어 희생되는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하는 것은 필자만의 지나친 억측은 아닐 것이다.」
그 희생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될지는 필자도 몰랐다. 아직 우리 사회는 건전한 토론과 논쟁, 합리성을 갖춘 선택과 실천을 하기에는 성숙하지 못한 사회인지 돌이켜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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