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우를 찾아서]창신대 정상철 교수
[향우를 찾아서]창신대 정상철 교수
  • 김광석
  • 승인 2003.12.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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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배달하며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창신대 부동산학과장 정상철 교수.                 
  
창신대학 부동산학 대학원 개설 ‘꿈’


지난 12월 초, 마산에 있는 창신대학 부동산학과장실.

양복을 입은 점잖은 교수를 연상했던 기자는 당황했다. 흙이 묻은 등산화에 초겨울임에도 연신 땀을 훔치고 있는 정상철(45·사진) 교수. 이제 막 학생들을 데리고 팔용산에 올라 현장 학습을 다녀오는 길이란다.
부동산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땅 부자인가. 느닷없는 우문에 “목수가 제 집 잘 짓고 사는 것 봤냐”며 웃는다.

그는 주·야간 300여명의 학생들에게 부동산학을 강의하고 있다. “주부, 직장인 학생들이 부쩍 늘고있다. 힘든 세태를 반영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번에 크게 버는 벼락부자를 꿈꾸는 제자는 질색”이라 했다. 부동산학은 엄연히 ‘학문’이므로 투기에 앞장서서는 안 된다는 지론이다.

그는 서면 중현 정기채(83), 김삼순(78)씨의 3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중현초(33회), 서면중(5회), 남해종고(41회)를 나왔다. 대학에 합격했으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학을 꿈꾸며 학자금을 모으러 1년간 사우디 건설현장으로 나갔다. 돌아와서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 입학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사우디서 모은 1,000만원으로는 미국 유학비로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 차에 “돈이 없어도 신문을 배달하면 대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신문장학생 광고를 보았다.

84년, 일본 아세아 대학으로 날아갔다. 새벽 3시, 오후 4시 하루 두 번 신문배달, 독자 확보에 나섰다. 자신처럼 가난 때문에 신문장학생으로 나선 30여명의 일본대학생들과 경쟁했다.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았다. 처음엔 초인종을 눌러도 사람이 나오지 않더란다. 신문 지국에서 한글로 써준 일본말로 초인종에 대고 떠듬거렸다. 그러자 발음도 안 맞는 일본말에 놀래서들 나와보더란다. 몸짓 발짓하는 이방인을 가엾이 여겨서인지 월 20여명씩 구독자가 늘어 구독자 확장상을 받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거름 한 짐씩 내다 놓고서야 학교를 갔던 고생이 체력을 뒷바쳤다. “살려고 하면 죽을 일은 없다”는 것도 그때 배웠다.

이듬해 결혼을 했다. 아내 장석순씨(40)와 수개월에 겨우 얼굴한 번 보는 신혼이었다. 호윤(18), 호준(15)이가 태어나고 가족까지 일본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고생 끝에 일본중앙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이들의 유창한 일본어 구사를 덤으로 얻었다.

고국으로 돌아와 대덕단지내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정보정책실에 1년 간 근무했다. 그러다 98년 창신대에서 부동산학과를 신설하면서 강단에 섰다.

그의 이력서를 작은 지면에 담기엔 여백이 너무 부족하다. 모교대학 객원교수, 중국연변대학 동북아연구소 객원 연구원 등 국제적 활동도 만만치 않다. 공인중계사 자격시험 출제위원, 대한공인중계사협회 자문교수, 부동산 공인경매사 자격시험 출제위원, 한국부동산학회 학술이사 등 국내 활동도 다양하다.

주택경제신문 논설위원, 케이비에스창원방송 부동산 강의 고정 출연, 경남도민일보 경제칼럼니스트로 언론계도 넘나들고 있다. 부동산경제론을 비롯해 9권의 공저 또는 단독으로 책을 냈다.

하지만 그는 ‘학자’임을 강조했다. 늘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학문연구가 자기 체질에 ‘딱’ 맞단다.

그는 군민들에게 땅을 사려는 외지인들을 경계하라고 충고했다. “투기꾼들은 땅 값을 올려 한 몫 챙기고는 빠져버린다. 결국 손해는 주민이 본다”고 한다. 

언제 고향으로 돌아오겠느냐고 물었다. 창신대학에 부동산학과 대학원을 개설하고 나서 생각해보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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