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마을의 젊은 농부는…
인간의 삶이 아름다울 때는 자연에 순응하며 살 때가 아닐까?
나는 지도가 있는 작은 책자 하나를 들고 바람 부는 가천마을 입구에서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설흘산을 내려온 이른 아침부터 암수바위를 보겠다고 마을을 기웃거리는데 건너 다랭이 밭에서 누군가 냅다 소리를 지른다. “와서 아침 묵고 가이소!” 암수바위와 다랭이 밭을 카메라에 담고있던 내 귀가 번쩍 뜨였다. 아니 잘 못 들은 소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고 그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건너 오이소, 와서 아침 묵고 가이소”
나는 마을을 내려올 때 보았던 할매 막걸리집 생각이 나서 비탈길을 되돌아가 막걸리 한 통을 사들고 건너 다랭이 밭으로 갔다. 지난 여름 수해의 흔적은 어디나 남아있어서 마을 가운데 흐르는 작은 개울을 건너는데도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바다를보며 논둑에서 쉬고 있는 젊은 농부.
 


 다랭이 밭에서 만난 김정주씨는 가천마을 나무 많은 집 882번지에 주소를 두고 있는 37살 젊은 농부다. 그때가 8시쯤 되었을까, 밭에는 세 사람이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민박집을 운영한다는 그의 숙모는 금방 지어온 햅쌀밥과 조개미역국을 대접에 푸며 아침을 권했다. 함지박에는 갈치구이와 맛깔스런 반찬들이 식욕을 돋우었다. 그의 숙모가 그들이 먹고 난 수저를 바지에 쓰윽 닦아 준 숟가락에는 그들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언제 내가 논둑에 쭈그리고 앉아 함지박에 담아내 온 농사꾼의 밥을 먹어본 적이 있었던가? 마늘을 파종하기 위해 벼를 추수한 논을 갈아엎고 있던 농부는 간식처럼 농사의 어려움에 대해 몇 마디 했다. 자연에 묻히면 누구나 이런 여유가 생기는 것인지. 바람이 불 때마다 흰쌀밥에 뿌연 흙먼지가 날아 와 앉았지만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는 다랭이 마을이 근래에 들어 많이 알려진 탓인지 준비도 없이 너무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무엇을 특별히 준비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방문객을 맞는다는 것이 조금은 역부족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설흘산에서 내려오는 길이라는 걸 알고 설흘산 봉수대가 이번 태풍으로 무너진 것을 자신의 일처럼 염려하고 있었다.
젊은 농부 그도 한 때는 도시의 삶을 기웃거리던 때가 있었음을 이야기를 할 때 시선은 먼 노도를 향해 있었다. 그러나 아내와 두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거듭 물어도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다. 한 때 그가 도시 생활을 해보지 않았다면 도시는 언젠가 그도 고향을 버리고 가서 살고 싶은 곳으로 자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타관의 삶이 어떻다는 것을 알아서일까. 그의 말속에는 고향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했다.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논둑에 앉아 그가 사는 이야기를 듣는 일은 도시에서 시들했던 내 삶을 깨어나게 했다.
자연에 순응하는 사람들, 바다를 바라보며 계절이 바뀌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철마다 밭을 갈아 씨뿌리는 욕심부리지 않은 일상이 얼마나 여유 있는 삶을 보장해주는지 그는 모두 아는 농부였다.

 
 
가천마을에서 만난 아이
 

이런저런 젊은 농부의 풋풋한 이야기를 들으며 다랭이 밭가에 앉아서 먹는 아침밥은 성찬이었다. 뒤에는 설흘산이 감싸고 있고, 마을 중간에는 미륵바위가, 바로 앞에는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가 동화 속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서 더 이상 바랄 것도 더 이상 후회할 것도 없었다. 그 아침 우연한 걸음에 농부 김정주씨를 만난 건 가천마을의 미래를 보는 듯 위안이 되었다.
행복이란 결코 어떤 방법으로든 타인의 삶과 비교되어서도 안되고,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것은 스스로 만들어 누리는 낙원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내가 아는 가천마을은 바다와 하늘을 잇는 좁고 가파른 절벽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으로 어미가슴을 파고드는 어린아이처럼 붙어있었다. 나는 다랭이 마을 언덕에서 고향을 노래한 시 한편을 떠올렸다.

해질 무렵이면 언덕에 올라
성공하면 돌아 가리라던 안개 속 고향
그리워하지 않았던 건 아니라네
저 아득한 협곡을 지나
바닥에 닿아 본 그대는 알리라
자신이 선택했다 할지라도 알고 보면
그 무엇도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음을,
초대받은 식탁 위에는 현란한 말의 성찬
그늘에서 제조된 말일수록
다량의 독극물이 함유되어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네
나 차마 입을 자를 수 없어 귀를 잘랐다네
그때 자른 귀 자라지 않아
나 아직은 귀향할 수가 없네
길 위의 시간들 아무리 혼곤하다 해도
아무리 바닥의 삶이 눈물겨워도
공금을 횡령하고 숨어사는
마을금고 직원의 신분으로
고향 어귀를 배회할 수는 차마 없는 것
집을 떠나올 때 그 밤의 안개는
얼마나 매혹적이었으며 도발적이기까지 했는지
그때처럼 나 지금도 안개보다 푸근한 애인은 없다네
내가 귀향할 수 없는 이유는 그뿐이라네
           - 詩<꿈의 귀향> 전문 -

마음 넉넉한 부자로 사는 젊은 농부를 만나서 그랬을까? 가천마을이 전보다 더 좋아 보였다. 그러나 묻고 싶었지만 물을 수 없는 말이 있었다. 아니 그는 이미 다 알고 있었으므로 물을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한 때 당신이 그렇게 떠나고 싶어했던 남해는 세상을 두루 돌아본 한 시인이 가장 살고 싶은 지상의 한 곳이라는 것을 알기나 하느냐고’

/김인자(시인·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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