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청룡의 해 갑진년(甲辰年)의 새해가 활짝 열렸다. 새해 연초에는 각자 새로운 꿈과 희망을 기원하면서 가정의 화목과 사회의 안녕을 염원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은 우리 사회 모두의 ‘집안이 화목하여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가정 내 화목과 사랑을 잘 구현하여 사회가 조화롭고 행하는 모든 일이 원만하게 잘 풀려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보통 ‘화(和)’는 벼(禾)와 입(口)을 합친 말인데 벼는 밥이 되는 곡식이고 입은 음식을 먹는 몸의 일부이므로 ‘화(和)’는 ‘밥을 먹는다’는 말이
새해가 밝았습니다. 아니 새날이 또 밝았습니다. 떠오르는 해야 어제와 다를 바 없지만, 새해 첫날은 시작의 의미와 새로움이라는 의미가 새겨져 있기에 그 기운이 또한 평소와 다른 감회를 느끼게 해 줍니다. 지난해와 새해는 단 하루 상관이긴 하지만,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의미를 두면서 심중을 달래는 이러한 다짐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관점이 다 틀리므로 새로움의 여부를 객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어느 분은 단, 한순간에 깨달아 새로움의 경지에 이르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지극한 공덕이 있어도 새로움에 도
나는 남해가 좋다. 뛰어난 풍광이나 지난날의 추억 때문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지금의 남해 사람들이다. 가능하면 일찍 남해읍 전통시장에 가 보라. 세상 어디에 그런 반가움과 정겨움으로 시장을 찾는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하는 곳이 있단 말인가. 그들이 파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성실한 일상의 숭고한 아름다움이다.홍덕정 남면 면사무소와 버스 정류소 사잇길을 오후에 걸어 보라. 꿈에나 그리는 느림의 평화가 겨울 햇살보다 길게 늘어져 있다. 무지개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내 친구 석환이가 보내 주는 마늘과 시금치는 깊은 우정과 성실이 아
설흘산(雪屹山)의 옛 이름은 소흘산(所訖山)이었다. 소흘산이 언제부터 설흘산으로 바뀌었으며 무슨 이유로 바뀌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고 알려주는 자료도 없다. 지금의 설흘산은 가천의 다랭이마을과 함께 트래킹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남해의 멋진 풍광은 등산객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명소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남쪽의 해안선은 소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우며 산정에서 보는 일출과 일몰은 장관이다.소흘산의 기록은 조선 세종 30년(1448) 의정부에서 병조의 첩정에 의거하여 소나무를 사사로 베지 못
일단 예술이라는 용어의 기원을 살펴보면 라틴어로 아르스(Ars)에서 유래되었으며, 현대에서 아트(Art)는 단지 물리적 기술과 관련된 용어만은 아니고 현실적 삶 속에서 경험적 지식이나 실천적 지식과 관련해서도 자주 사용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3가지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들에게 ‘무시케 (Mousike)’는 음악을 의미하는 뮤직의 어원이 되기 때문에 흔히 음악으로 번역하거나 이해한다. 그러나 그리스어의 무시케는 훨씬 넓은 영역을 포함한다. 무시케를 관장하는 무사여신들은 기억의 여신 므네
1973년 6월 22일 개통한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인 남해대교는 자연적으로 생긴 섬 남해군을 육지와 연결해 준 다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세계 최고 현수교인 금문교를 본떠서 만들었다. 길이 660m 폭 12m 동양 최대의 현수교였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올해로 50년이 되었다. 긴 세월 동안 무거운 짐을 지고 버틴 탓에 보수 공수 후 대형 타량은 새 다리를 이용하고 있다. 남해대교를 개통하는 날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와서 다리가 무너질까 봐 교통정리를 할 정도였다 한다. 인기는 물론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신혼
필자가 마을 어귀에 들어설 때면 늘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노모(老母) 한 분이 나지막한 돌담에 앉아 앞산을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어떤 때는 누군가가 그리워서, 또 어떤 때는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재미가 그만일 것 같아 앉아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분이 전부일까요. 약간은 쌀쌀한 날씨임에도 햇빛이 들기만 하면, 어김없이 돌담에 앉아 산을 응시하는 모습은 무언가 애절한 사연이 있는 듯합니다. 그 사연이란 마치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아니 꼭 올 것이라는 희망을 마음에 담아 하염없이 기다리는 여정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듯이 인간은 탁월성을 발휘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며, 인간만이 웃는 동물이라 주장했다. 피타고라스는 인간의 삶을 축제라고 했으며, 축제에 참가하는 운동선수는 시합을 위해 참가하고, 많은 사람들은 구경하기 위해 참가한다. 이에 하위징아는 축제의 본질을 놀이에서 발견했으며, 놀이의 본질은 재미에 있다고 했다. 하위징아는 인류의 특징인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확실하게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것은 호모루덴스라고 했다. 호모루덴스는 유희, 놀이하는 인간을 말한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하위징아는 놀이의 본질적 요소로 재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귀거래혜 전원장무호불귀) 旣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 (기자이심위형역 해추창이독비)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오이왕지불간 지래자지가추) 實迷途其未遠 覺今是而昨非 (실미도기미원 각금시이작비) 舟遙遙以輕颺 風飄飄而吹衣 (주요요이경양 풍표표이취의) 問征夫以前路 恨晨光之熹微 (문정부이전로 한신광지희미) 乃瞻衡宇 載欣載奔 (내첨형우해흔재분) 僮僕歡迎 稚子候門 三徑就荒 (동복환영 치자후문 삼경취황) 돌아가자, 정원이 황폐해지고 있거늘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이제껏 내 마음 몸 위해 부림받아 왔거늘, 무엇 때문에 그대로
석교리의 옛 지명은 마을 입구에 장승이 있어 장승들이라고 불렀다. 마을 앞에는 치천이라는 큰 내가 있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불편하고 큰물이라도 나면 임시로 만든 다리나 징검돌이 떠내려가기도 하였다. 400년 전 평산현에 현령이 주재 할 때 박 장군이란 장사가 있어 큰 돌로 다리를 놓아 사람들이 통행을 하게 하였다. 이 일이 있고 난 뒤에 지명을 석교라고 하였으며 석교리는 돌 석(石) 다리 교(橋)자를 쓰니 돌다리 마을이다. 경지정리 작업으로 돌다리가 필요가 없어지자 다릿돌을 마을 앞 공덕비가 있는 자리로 옮겨 놓았다. 전국에는 15
夫天地子萬物之逆旅 (부천지자만물지역여) 光陰者百代之科客 (광음자백대지과객) 而浮生若夢爲歡幾何 (이부생약몽위환기하) 古人秉燭夜遊 良有以也(고인승측야유 양유이야) 況陽春召我以煙景 (황양춘소아이연경) 大塊假我以文章 (대괴가의이문장)會桃李之芳園 序天倫之樂事(회도리지방원 서천륜지낙사) 群季俊秀 皆爲惠連 (군계준수 개위혜련)吾人詠歌 獨참康樂 (오인영가 독참강락) 幽賞未已 高談轉淸 (유상미이 고담전청)開瓊筵以坐花 飛羽觴而醉月 (개경연이좌화 비우상이취월) 不有佳作 何伸雅懷 (불유가작 하신아회)如詩不成. 罰依金谷酒數 (여시불성 벌의금곡주수)대체로
지금은 흔치 않은 이야기이지만, 60년대에서 70년대 살았던 분들에게는 연필에 담긴 소담한 추억을 잊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당시는 농경시대에서 산업화 초기로 이어지는 시기라 여러 가지로 변화의 기류가 형성되는 시점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5일 장인데 장이 설 때면 갖가지 새로운 물건들이 많이 나와 구경하던 재미에 흠뻑 빠지곤 하였습니다. 어떤 물건이든지 기존의 것을 능가하는 전혀 새로운 물건은 그야말로 호기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특히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이 있었다면 연필이었습니다. 먹과
선구리는 잣나무가 무성한 어촌으로 배가 많이 드나들어 잣나무 백(栢) 수풀 림(林)자를 백림(栢林)으로 불리다가 선구로 고쳐 부른 마을이라고 한다. 다른 지명 유래는 신선이 놀던 곳이라 하여 선구(仙仇)라고 하였다고 한다. 선구리는 배 선(船) 원수 구(仇)자를 쓰고 우리말 지명은 배금, 배구미라고 읽었다. 이는 백림에서 와전 된 것이라고 하지만 백림은 배기미의 한자표기로 본다. 백임-배김-배기미로 바뀐 것일 뿐이다. 선구리의 옛날 지명은 선구미리(船仇味里)였으며 이는 배를 한자로 옮기면서 선자를 사용한 것은 누구나 알 수가 있다.
원시 시대에 인간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파괴적 자연현상에 압도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철학도 놀라움에서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고대 종교는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병이나 고통을 치유하는데 주요 기능과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인간의 근원적 고통에 대한 희생제의의 역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인간은 자연현상이나 질병에 대한 초월적인 강력한 힘을 가진 신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초월적인 힘을 가진 신과 소통하는 방법을 모색했을 것이다. 신과 소통하기 위한 일반적 방법 중 하나가 제의라 할 수 있다. 제의와 신화는 문화적
엄마는 섬(강화도)에서 나와 바다 위 배 안에서 품고 있던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아명(兒名)이 선생(船生)이다. 아이가 성장하여 53세가 되던 해 그는 섬(노도)으로 들어가 그 곳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죽었다.섬은 바다를 품고 삿갓처럼 엎드려 있다. 서포(西浦)의 섬 노도(櫓島)이다. 남해군 상주면 백련리 앞 바다 건너 삿갓처럼 생긴 섬이다. 서포 김만중이 3년간(1689년~1692년) 유배 생활을 하였던 유형(流刑)의 땅이다.서포 김만중. 조선조 숙종임금때의 문신이자 학자이며 문인이다. 그는 권세있는 조선조 명문거족의 자손이다
우리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일생을 살다 가는 동안 아주 착하게 좋은 일들을 많이 하며 살아가시는 분들과 그저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분들과 남들에게 피해를 많이 끼치며 살아가는 분들과 같이 섞여 생활들을 하며 세월이 흘러간다고 봅니다.이 세상을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겪어내며 헤쳐 나갈 일들이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자연과의 싸움, 둘째는 사회와의 싸움, 셋째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추위와 더위, 눈, 비, 바람 등의 자연현상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겨내야 하고 어려서 유치원부터 각
가을의 특징이라 할 선선한 기후가 지나가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기운이 몸과 마음을 엄습합니다. 이런 날씨를 보면 가을이 어느 정도 우리 곁에 머물다 갔는지 알 수 없지만, 딱히 초겨울이라 명명하지 않더라도 늦가을의 정취는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분위기를 엮어낼 11월, 이때쯤이면 예나 지금이나 특히 우리의 시선을 끄는 행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조상을 기리는 시제(時祭)나 시향(時享)을 모시는 일입니다. 선대 조상을 모신다는 차원에서 시제, 시향은 조상의 얼을 계승하고 기린다는
홍현리는 옛날에는 물직리로 불리던 곳이다. 바다에서 소라가 많이 잡혀 라라(螺螺)라고 부르다 지형이 무지개 같다하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홍현으로 지명을 고쳤다고 한다. 홍현리는 무지개 홍(虹) 고개 현(峴)자를 사용하고 있어 무지개 고개마을이다. 그러나 200년 전의 지명은 물직리였다. 물직리는 말 물(勿) 곧을 직(直)자를 쓰므로 곧지 않다는 뜻이므로 구불구불한 마을이라는 지명이다. 당시에는 어떻게 읽혔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무지기나 물지기로 불리었을 것으로 추정을 한다. 물지기가 무지개와 비슷함으로 후에 홍현으로 바꾼
다시 짚차를 타고 내려와 리틀버스에 탑승 장백폭포 주차장에 내려 장백폭포, 녹연담, 소천지 등을 구경하면서 개선장군이 되어 천천히 하산을 하였다. 그렇게 꿈에서 그리던 백두산 천지를 뒤로하고 국도를 3시간 달려왔던 길 퉁화로 이동했다. 한국식당이 손님을 반긴다. 한국식 음식과 고량주, 소주,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만찬을 즐겼다.뒷날은 지안으로 이동 고주몽이 건국한 고구려 졸본성과 2번째 수도 국내성을 구경했다. 위치는 압록강변 위쪽에 있으며 북쪽은 중국땅 지안 남쪽은 만포라 한다. 국내성 유적은 환도산성, 광개토왕비, 장수왕릉 등
긴 세월 오랜만에 선택한 해외여행 산행지 한반도 최고봉 민족의 혼이 깃든 영산 백두산을 지인들과 남해 전문 화전관광 여행사를 통해 다녀왔다. 말로만 들어온 우리나라 최고 산은 말 그대로였다. 해발 2,744m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성충화산으로 중국에서는 청바이산이라 부른다. 함경남도와 북도, 중국 동부지방(만주) 길림성이 접하는 국경에 걸쳐있는 활화산으로 총면적 8,000㎢ 전라북도 면적과 비슷하며 북쪽으로 장백산이 있다. 평균수심 213m 가장 깊은 곳 384m 둘레 14km 16개 봉우리중 6개 중국 7개 북한 1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