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5일 이동초 역사관 개관식에 다녀왔다. 이동초 43회 졸업생으로서 현재 재경동문회장을 맡고 있기에 동문들을 대표하여 사무국장과 함께 참석하였는데 군수와 교육장을 비롯한 많은 내빈도 참석하여 역사적인 개관 테이프를 끊었다.우리나라 초등학교 중에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학교가 많지 않을 것이다. 나의 모교인 이동초도 장구한 역사를 지녀 개교한 지 100년을 넘어 올해가 112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1910년 4월 1일 개교 이후 100주년 기념비를 세운 때가 7년 전 2015년 4월 4일 총동창회
지금은 올 2월에 고인이 되어 남해 녹두산 공원묘지에 잠들어 있는 남편 신동윤 씨를 그리며 이 글을 쓴다. 남편인 신동윤 씨는 노령으로 낙후된 고향 서면 도산마을 위해 자그마한 희망의 불씨를 만들겠다는 순수한 열정 하나로 58세의 나이인 2008년 8월에 귀향했다. 남편은 지난 4년 동안 크고 작은 마을 숙원사업 37개를 추진하여 매듭지었다. 지난 2009년 정현태 전 군수 재임 시 여성창업 지원사업으로 표고버섯 재배사업에 선정되어 1억 원을 순수한 보조금으로 받아 1000여 평의 우리 땅을 무상으로 사용하게 했으며 자부담 1000
망운산(望雲山)은 해발 758m로 남해안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남해군의 진산(鎭山)이다. 망운이라는 말은 구름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자식이 타향에서 고향의 어버이를 생각하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망운지정(望雲之情)이라는 고사와 통한다.신당서(新唐書)의 적인걸(狄仁傑) 전에 따르면, 측천무후 시대 적인걸이 병주(幷州)의 법조참군으로 근무할 때 그의 부모는 하양(河陽)에 살았다, 적인걸은 부모가 그리울 때마다 태항산에 올라 외롭게 떠가는 흰 구름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내 부모는 저 구름 아래 계시는데 나는 멀리서 바라만 볼 뿐
최근 금리상승으로 인한 경기침체 등으로 전국적으로 부동산경기가 침체되어 있다. 남해군도 예외 없이 부동산 거래절벽이 심각한 수준이며, 농지법개정으로 농지취득 제한이 생기면서 설상가상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로 인한 문제점 및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남해군은 전국에서도 고령화로 인한 인구소멸도가 최상위권이라 인구증대를 위한 귀촌인 유치가 최우선 정책과제이다. 하지만 부동산거래 급감으로 귀촌 희망자들이 주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귀촌인 유치에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다. 불경기라서 주택수요가 많이 줄었지만, 막상 실수
1970년부터 유럽은 산업구조의 변화로 구산업도시들의 재생이 중요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영국 글래스고우는 조선업과 제조업의 쇠락으로 대량실업과 가난으로 인한 슬럼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었으며 폭력과 범죄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와 평판을 받고 있는 암흑도시였다. 글래스고우는 1990년 유럽문화도시에 선정되면서 다양한 문화인프라를 구축하고 음악, 시각예술, 연극, 디자인, 건축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분야의 이벤트를 개최하여 과거의 부정적인 도시 이미지를 벗고 문화예술 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2003년 유럽문화수도로 지정된 리버풀은 정치
마을 터가 좋고 주변 풍광이 아름다운 곳으로 이름난 용소 마을은 북쪽으로 호구산이 병풍처럼 우뚝 서 있다. 멀리서 언뜻 보아도 호랑이가 살 만큼 늠름한 기세가 엿보이는 산이다. 또 남쪽으로는 앵강만과 노도 그리고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용소 마을은 용이 살았다는 소가 있어 용소 마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용소 위에는 보광사라 불리던 용문사도 있다. 용소 마을에 있는 용문사는 신라 신문왕 6년에 원효대사가 금산에 세운 보광사를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용문사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용소 마을에는 이동면과 남면을 오가는 길
서포 김만중(1637~1692) 선생은 숙종이 정비인 인현황후를 폐비시키고 장희빈을 세우려하자 이를 반대하다가 남해에 유배당한다. 그가 절해고도의 남해의 유배지에서 쓴 남황과 사친시의 애달픈 사연을 떠올려 보며 시집과 고향신문에 발표한 필자의 시 한편도 말미에 적어 본다. 南荒(남쪽의 변방)西塞經年謫(서새경년적) 서쪽 변방에선 해를 지난 귀양살이南荒自首人(남황자수인) 남쪽 변방에선 허연 머리의 죄인灰心情攬鏡(회심정람경) 재가 된 마음에 거울 잡기 귀찮고血泣情乘棦(혈읍정승쟁) 피눈물 흘리며 정신없이 뗏목에 올랐네落日鄕書斷(낙일향서단)
겨울의 문턱이긴 하나 무척 바빴던 시기를 지난 지금, 조금은 한산해진 동네 앞길을 걸어봅니다. 여느 때나 다름없이 걷는 길이지만, 오늘따라 길에서 품어내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때마침 길을 따라 흐르던 바람마저도 숨길을 고르고 “왜 이리 소란스러워, 길아! 무슨 일이 있는 거니”라고 반문합니다. 요란스러운 길의 행보, 무언가 의기에 찬 결기가 있는 듯합니다. 그의 결기가 무엇인지 확인할 사이도 없이 “이 길을 걸으시는 임이여, 이 길은 보통 길이 아닙니다. 그 옛날 의분에 찬 임께서 결연한 의지를 지니고 걸었던 길입니다. 그들
여섯 번째로 소개하는 책은 문신수선생의 「세상살이 토막말」과 일곱 번째로 소개하는 책은 문신수 선생 소설집 「석새 베에 열새 바느질」이다.문신수 선생은 훌륭한 교육자요 순수문학가로 살아오셨으며 “안에서는 오순도순 밖에선 서글서글” 하는 명언으로 친화를 몸소 실천하며 살아오신 남해의 지성으로 남해초등학교교장 남해 3.1운동기념비문 작성, 1982년 남해문학회창설, 남해신문과 남해시대 논설위원으로 연재 등 지역에 헌신한 공으로 남해군민 대상을 받으신 남해의 큰 별이시다. 그는 문학이 생명의 재창조 작업이라 하셨다.
40여 년 전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춥고 길었다. 중국의 10대 명산 중 하나인 무이산(武夷山) 주희(주자)의 시(詩)인 ‘무이구곡’ 한시를 10포 병풍 글을 남기고 저승과 약속이나 한 것처럼 쓸쓸히 편안하게 훌쩍 떠나신 아버지. 벼루에 먹을 가는 막내 아들에게 손목에 힘을 주지 말고 가볍게 살살 갈아야 된다 하시며 가르쳐 주시던 아버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문득 아버지 기침소리 노래가 떠오른다. 남겨진 자식 울음소리 등에지고/ 다시는 올 수 없는 먼 길 가신 아버지/ 이제는 그 어디서도 들을 수가 없네요 / 따스한
약천 남구만 선생의 영유시 20수는 남해특산물인 유자를 선비에 비유하며 그 아름다움을 찬양한 한 것 외에도 유자로 인한 농민들이 과도한 조세부담에 힘들어 하고 있음을 고도의 상징성과 은유의 기법으로 나타내고 있다. 20수를 모두 소개함은 그 양이 너무 방대하여 남해군지(2018년도 발간)에 올려진 20수 중 그 한 수를 올려보며 그 당시 우리 고향의 유자 향기와 선조들의 애환을 들춰 보기로 한다. 【이 지방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수 십 년 전에는 마을의 집에 유자나무가 곳곳마다 숲을 이루어 매년 가을과 겨울사이에는 유자의 누런빛이
유럽은 제국주의의 팽창으로 결국 세계 1차대전이 일어났고 지식인들은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비판했다. 오스트리아 귀족출신인 칼레르기는 제1차 세계대전 후 1922년 ‘범유럽 운동’이라는 단체를 창립하고 1923년 「범유럽」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유럽 민족들 간의 분쟁거리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체를 결성하여 평화연방창설, 경제공동체설립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유럽연방을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1930년 세계공황은 극단적인 민족주의로 전환되어 유럽을 다시 전쟁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이 전쟁을 통해 유럽인들이 다시금 유럽이념에
며칠 전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立冬)이 지났다. 추워진 날씨에 사람들은 옷장 속에 잠자던 두툼한 잠바와 난방기구를 하나, 둘 꺼내 겨울나기 준비를 한다.전국 소방관서에서는 겨울철 화재 예방 분위기 조성을 위해 매년 11월을 ‘불조심 강조의 달’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으며 대형화재로 인한 인명피해 저감을 위해 겨울철 소방안전대책을 집중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경남소방본부에서 최근 5년간(‘17년~’21년) 겨울철 화재 4073건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부주의로 인한 화재가 2124건(52.1%)으로 가장 높았고 전기적 원인(18.3%)
‘마을 전체가 대나무로 가득 차 있었는데 마을이 밑 길가에까지 대나무로 이어져 있어 예전부터 주민들이 위 대밭을 상죽, 밑 대밭을 하죽이라고 불러오고 있다. 상죽마을은 창선면의 면사무소와 중·고등학교가 있는 가장 중심지 마을이다. 창선고등학교 옆에는 옛날 면사무소 자리가 있으며, 거기에는 창선과 관련된 여러 비석이 즐비하게 서 있어 창선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남해군청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상죽마을 유래 이야기다.창선면의 중심지인 상죽마을에는 군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있다. 지정번호는 12-22-8-1이며 1982년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1629~1711) 선생은 숙종 초 대사성·형조판서를 거쳐 1679년(숙종 5) 한성부좌윤을 지냈다. 같은 해 남인인 윤휴·허견 등을 탄핵하다가 남해로 유배되었다. 남해에서 9개월여 유배생활을 하면서 그 당시 우리 고향의 특산물 유자를 노래한 영유시(詠柚詩) 20수를 비롯하여 제영등망운산(題詠登望雲山), 제영등금산(題詠登錦山) 등을 남겼다.지면관계상『남해군지』상권(2010년)에 수록된 제영등망운산 1수만 올려보며 당대의 거목이 남해의 진산 망운산에 올랐던 시대로 돌아가 오래 전에 우리 고향을 다녀갔던 그
꽃다운 젊은이들이 유명을 달리한 이태원 참사의 충격 여파가 여전히 가시지 않습니다. 어떻게 한순간에 그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요? 적어도 문명국가라 지칭하며 우리 사회의 교육이나 문화적 역량이나 지적 수준에 견주어 볼 때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러한 참사는 극도의 빈곤 국가에서나 간간이 일어나는 일일 것이라는 예감마저 무색게 한 정말 엄청난 희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가 이 소식을 접했을 때 그 충격과 당혹감에 정신이 혼미해졌음은 물론 심신마저 중심을 잡기 어려
남해에 유배문학을 뚜렷이 남긴 대표적인 인물로는 6명 정도로 압축된다.자암집에 화전별곡 등 수많은 시를 남긴 자암(自庵) 김구(金絿)를 필두로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라는 불후의 명작 소설과 어머니를 위한 시를 남긴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망운산과 금산에 올라 고향을 생각하며 고향을 그리는 시를 남긴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 장인 김만중을 생각하며 매부(梅賦)를 쓴 소재(疎齋) 이이명(李頤命), 남해의 풍속을 담은 기행문인 남해문견록(南海聞見錄)을 쓴 후송(後松) 유의양(柳義養), 15개월 정도의 짧은 유배기간 동안 300여
문화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정체성(正體性, identity)과 문화정체성(Cultural identity)의 사전적 의미를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정체(正體) 또는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은 존재의 본질 또는 이를 규명하는 성질이다. 정체성은 상당 기간 동안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한 실체로서 자기에 대한 주관적 경험을 포함 한다. 정체성은 자기 내부에서 일관된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과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 어떤 대상의
앞의 세종 때 경상도 지리지 곤남군조의 기록에서 ‘죽산리 일대 언막이 공사에 읍성을 헐어서 사용했다’는 역사적 현장을 필자는 봉천에서 멱 감으며 성벽 돌로 추정되는 잘 다듬은 어마어마한 큰 돌들 밑에서 미꾸라지 묶은 대꼬챙이로 손바닥 보다 큰 참게와 가재는 물론 팔뚝만한 뱀장어를 많이 꼬셔내었다. 봉천의 언막이로 하마정들과 파천들에 홍수가 밀려오는 것을 막았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한다. 그 때 농사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라 하여 치수에 치중할 때이고 우리 조상들은 그 때 어떻게 홍수를 막아 마을과 농토를 지켰는가를 후대는 알아야
오색 단풍이 무르익는 계절입니다. 주변 산야를 온통 휘황찬란한 색감으로 물들일 단풍의 비경(祕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이러한 비경이 있기에 아마 가을이 더욱 빛이 나는 것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입니다. 잎마다 형형색색의 색감이 어찌 저렇듯 곱게 물들 수 있는지, 그들의 의지가 얼마나 단호하였기에 사시(四時)의 차례가 바뀜에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처럼 아름다운 비경을 연출할 수 있는지 자못 궁금하기까지 합니다. 특히 미학(美學)과 심학(心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자연은 미(美)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