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 김만중(1637~1692) 선생은 숙종이 정비인 인현황후를 폐비시키고 장희빈을 세우려하자 이를 반대하다가 남해에 유배당한다. 그가 절해고도의 남해의 유배지에서 쓴 남황과 사친시의 애달픈 사연을 떠올려 보며 시집과 고향신문에 발표한 필자의 시 한편도 말미에 적어 본다. 南荒(남쪽의 변방)西塞經年謫(서새경년적) 서쪽 변방에선 해를 지난 귀양살이南荒自首人(남황자수인) 남쪽 변방에선 허연 머리의 죄인灰心情攬鏡(회심정람경) 재가 된 마음에 거울 잡기 귀찮고血泣情乘棦(혈읍정승쟁) 피눈물 흘리며 정신없이 뗏목에 올랐네落日鄕書斷(낙일향서단)
겨울의 문턱이긴 하나 무척 바빴던 시기를 지난 지금, 조금은 한산해진 동네 앞길을 걸어봅니다. 여느 때나 다름없이 걷는 길이지만, 오늘따라 길에서 품어내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때마침 길을 따라 흐르던 바람마저도 숨길을 고르고 “왜 이리 소란스러워, 길아! 무슨 일이 있는 거니”라고 반문합니다. 요란스러운 길의 행보, 무언가 의기에 찬 결기가 있는 듯합니다. 그의 결기가 무엇인지 확인할 사이도 없이 “이 길을 걸으시는 임이여, 이 길은 보통 길이 아닙니다. 그 옛날 의분에 찬 임께서 결연한 의지를 지니고 걸었던 길입니다. 그들
여섯 번째로 소개하는 책은 문신수선생의 「세상살이 토막말」과 일곱 번째로 소개하는 책은 문신수 선생 소설집 「석새 베에 열새 바느질」이다.문신수 선생은 훌륭한 교육자요 순수문학가로 살아오셨으며 “안에서는 오순도순 밖에선 서글서글” 하는 명언으로 친화를 몸소 실천하며 살아오신 남해의 지성으로 남해초등학교교장 남해 3.1운동기념비문 작성, 1982년 남해문학회창설, 남해신문과 남해시대 논설위원으로 연재 등 지역에 헌신한 공으로 남해군민 대상을 받으신 남해의 큰 별이시다. 그는 문학이 생명의 재창조 작업이라 하셨다.
40여 년 전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춥고 길었다. 중국의 10대 명산 중 하나인 무이산(武夷山) 주희(주자)의 시(詩)인 ‘무이구곡’ 한시를 10포 병풍 글을 남기고 저승과 약속이나 한 것처럼 쓸쓸히 편안하게 훌쩍 떠나신 아버지. 벼루에 먹을 가는 막내 아들에게 손목에 힘을 주지 말고 가볍게 살살 갈아야 된다 하시며 가르쳐 주시던 아버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문득 아버지 기침소리 노래가 떠오른다. 남겨진 자식 울음소리 등에지고/ 다시는 올 수 없는 먼 길 가신 아버지/ 이제는 그 어디서도 들을 수가 없네요 / 따스한
약천 남구만 선생의 영유시 20수는 남해특산물인 유자를 선비에 비유하며 그 아름다움을 찬양한 한 것 외에도 유자로 인한 농민들이 과도한 조세부담에 힘들어 하고 있음을 고도의 상징성과 은유의 기법으로 나타내고 있다. 20수를 모두 소개함은 그 양이 너무 방대하여 남해군지(2018년도 발간)에 올려진 20수 중 그 한 수를 올려보며 그 당시 우리 고향의 유자 향기와 선조들의 애환을 들춰 보기로 한다. 【이 지방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수 십 년 전에는 마을의 집에 유자나무가 곳곳마다 숲을 이루어 매년 가을과 겨울사이에는 유자의 누런빛이
유럽은 제국주의의 팽창으로 결국 세계 1차대전이 일어났고 지식인들은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비판했다. 오스트리아 귀족출신인 칼레르기는 제1차 세계대전 후 1922년 ‘범유럽 운동’이라는 단체를 창립하고 1923년 「범유럽」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유럽 민족들 간의 분쟁거리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체를 결성하여 평화연방창설, 경제공동체설립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유럽연방을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1930년 세계공황은 극단적인 민족주의로 전환되어 유럽을 다시 전쟁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이 전쟁을 통해 유럽인들이 다시금 유럽이념에
며칠 전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立冬)이 지났다. 추워진 날씨에 사람들은 옷장 속에 잠자던 두툼한 잠바와 난방기구를 하나, 둘 꺼내 겨울나기 준비를 한다.전국 소방관서에서는 겨울철 화재 예방 분위기 조성을 위해 매년 11월을 ‘불조심 강조의 달’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으며 대형화재로 인한 인명피해 저감을 위해 겨울철 소방안전대책을 집중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경남소방본부에서 최근 5년간(‘17년~’21년) 겨울철 화재 4073건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부주의로 인한 화재가 2124건(52.1%)으로 가장 높았고 전기적 원인(18.3%)
‘마을 전체가 대나무로 가득 차 있었는데 마을이 밑 길가에까지 대나무로 이어져 있어 예전부터 주민들이 위 대밭을 상죽, 밑 대밭을 하죽이라고 불러오고 있다. 상죽마을은 창선면의 면사무소와 중·고등학교가 있는 가장 중심지 마을이다. 창선고등학교 옆에는 옛날 면사무소 자리가 있으며, 거기에는 창선과 관련된 여러 비석이 즐비하게 서 있어 창선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남해군청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상죽마을 유래 이야기다.창선면의 중심지인 상죽마을에는 군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있다. 지정번호는 12-22-8-1이며 1982년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1629~1711) 선생은 숙종 초 대사성·형조판서를 거쳐 1679년(숙종 5) 한성부좌윤을 지냈다. 같은 해 남인인 윤휴·허견 등을 탄핵하다가 남해로 유배되었다. 남해에서 9개월여 유배생활을 하면서 그 당시 우리 고향의 특산물 유자를 노래한 영유시(詠柚詩) 20수를 비롯하여 제영등망운산(題詠登望雲山), 제영등금산(題詠登錦山) 등을 남겼다.지면관계상『남해군지』상권(2010년)에 수록된 제영등망운산 1수만 올려보며 당대의 거목이 남해의 진산 망운산에 올랐던 시대로 돌아가 오래 전에 우리 고향을 다녀갔던 그
꽃다운 젊은이들이 유명을 달리한 이태원 참사의 충격 여파가 여전히 가시지 않습니다. 어떻게 한순간에 그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요? 적어도 문명국가라 지칭하며 우리 사회의 교육이나 문화적 역량이나 지적 수준에 견주어 볼 때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러한 참사는 극도의 빈곤 국가에서나 간간이 일어나는 일일 것이라는 예감마저 무색게 한 정말 엄청난 희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가 이 소식을 접했을 때 그 충격과 당혹감에 정신이 혼미해졌음은 물론 심신마저 중심을 잡기 어려
남해에 유배문학을 뚜렷이 남긴 대표적인 인물로는 6명 정도로 압축된다.자암집에 화전별곡 등 수많은 시를 남긴 자암(自庵) 김구(金絿)를 필두로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라는 불후의 명작 소설과 어머니를 위한 시를 남긴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망운산과 금산에 올라 고향을 생각하며 고향을 그리는 시를 남긴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 장인 김만중을 생각하며 매부(梅賦)를 쓴 소재(疎齋) 이이명(李頤命), 남해의 풍속을 담은 기행문인 남해문견록(南海聞見錄)을 쓴 후송(後松) 유의양(柳義養), 15개월 정도의 짧은 유배기간 동안 300여
문화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정체성(正體性, identity)과 문화정체성(Cultural identity)의 사전적 의미를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정체(正體) 또는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은 존재의 본질 또는 이를 규명하는 성질이다. 정체성은 상당 기간 동안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한 실체로서 자기에 대한 주관적 경험을 포함 한다. 정체성은 자기 내부에서 일관된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과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 어떤 대상의
앞의 세종 때 경상도 지리지 곤남군조의 기록에서 ‘죽산리 일대 언막이 공사에 읍성을 헐어서 사용했다’는 역사적 현장을 필자는 봉천에서 멱 감으며 성벽 돌로 추정되는 잘 다듬은 어마어마한 큰 돌들 밑에서 미꾸라지 묶은 대꼬챙이로 손바닥 보다 큰 참게와 가재는 물론 팔뚝만한 뱀장어를 많이 꼬셔내었다. 봉천의 언막이로 하마정들과 파천들에 홍수가 밀려오는 것을 막았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한다. 그 때 농사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라 하여 치수에 치중할 때이고 우리 조상들은 그 때 어떻게 홍수를 막아 마을과 농토를 지켰는가를 후대는 알아야
오색 단풍이 무르익는 계절입니다. 주변 산야를 온통 휘황찬란한 색감으로 물들일 단풍의 비경(祕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이러한 비경이 있기에 아마 가을이 더욱 빛이 나는 것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입니다. 잎마다 형형색색의 색감이 어찌 저렇듯 곱게 물들 수 있는지, 그들의 의지가 얼마나 단호하였기에 사시(四時)의 차례가 바뀜에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처럼 아름다운 비경을 연출할 수 있는지 자못 궁금하기까지 합니다. 특히 미학(美學)과 심학(心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자연은 미(美)와
가을이 깊어진다. 들판은 온통 황금색으로 물들어 간다. 부지런히 일하는 농부들 이마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다. 바야흐로 아름답고 풍성한 수확의 계절 가을이다. 예부터 가을걷이는 시기가 매우 중요했다. 비라도 내릴라치면 촌각을 다투어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바쁜 와중에도 새참은 꼭 먹어야 한다. 새참 먹는 장소로 딱 안성맞춤인 곳이 바로 설천면 고사마을 팽나무 아래다.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어 수많은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곳이다. 넉넉한 품 제공해주는 나무 그늘이 얼마나 소중한 장소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남해군 설
죽산리(竹山里)라는 지명은 여러 문헌과 비문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경상도 지리지에서는 남해읍성의 이전 과정에서 그 중심지로 적혀있기도 하다. 즉, 경상도 지리지 곤남군조를 살펴보면 읍성에 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세종 19년 남해를 복원하여 읍을 두었고, 세종 21년(1439) 화금현산성에서 죽산리(竹山里)로 읍성을 이전 축성하였는데 기존의 읍성이 비탈진 곳에 있어 옮겼다. 세종 21년(1439)에 읍성을 설치한 곳이 바로 군청이 위치한 곳이다. 읍성의 최초 제원은 문종 원년(1451) 「청경상충청각관성자척량계」라는 보고서를 정이오
지역문화와 축제를 소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우리는 광고콘텐츠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광고에 대한 지식이 없고 지역에 대한 상세한 데이터와 축제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문화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각인될 수 있는 축제와 지역문화 소개 광고물을 만들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광고를 의뢰하는 입장에서 광고에 대한 이해와 전문 지식이 있으면 지역문화를 홍보하고 광고콘텐츠를 만드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며, 광고콘텐츠 개발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광고는 인쇄광고, 영상광고, 라디오광고로 나눌 수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발전함에 따
초가을 벼가 잘 익은 가을 들판은 황금빛 카펫처럼 눈부시게 아름답다. 관광자원이 풍부한, 하늘이 베푸신 천혜의 대한민국 관광1번지 남해섬에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 매일같이 손님과 대화를 나누며 즐기는 해안선 베스트 드라이브 코스는 최상의 힐링 장소이며 나의 건강에 도움을 준다. 택시 손님을 목적지에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몽돌밭을 찾았다. 잔잔한 바다, 찰삭찰삭 물결이 몽돌을 빛나게 한다. ‘돌석님, 오랜만입니다. 요새는 영 바쁘신지 찾아 오지도 않고’ 하는 소리가 은은히 들린다. 눈에 들어오는 문양석 한 점, 오랜
외로운 만리 땅에 두 거목이 만났으니매화가 미리 알아 감응으로 피어 난 날슬프게 초사 읊으며 매부지어 바치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봉천이라는 큰 하천에는 여름날 멱 감으며 고태기와 송사리와 가재를 잡던 추억,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이면 아버님을 따라 봉천 지류에 대발을 치고 참게와 뱀장어를 한 바구니씩 잡던 추억, 그 봉천이 끝나는 곳에 강진바다가 펼쳐져 온갖 해산물이 넘쳐나 자맥질로 소라와 피조개, 새조개를 건져 올리던 추억이 새롭다. 어린 시절의 죽산 마을과 봉천 주변의 이러한 목가적인 이야기와는 차원이 다른 역사적 큰 흐름이 이
며칠 전의 이야기입니다. 필자의 집 바로 아래에 사는 여든을 훨씬 넘긴 할머니가 급히 대문을 두드리며 필자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일상에서 평소에 나들이를 자주하지 않는 것을 아는 필자로서는 그의 갑작스런 방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갑자기 찾아온 데는 필시 무언가 사연이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면서 얼른 대문을 열고 인사를 드린 후 무슨 일로 오셨느냐고 여쭙니다. 할머니는 무언가 답답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오른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 폰을 들어 보이며 어제 저녁부터 스마트 폰 액정 화면이 꺼지고 밧데리도 충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