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은 인구감소가 전국적으로 1등급 지역으로 나타나고있다. 사면에 바다도 있고 자연환경도 좋은 곳인데, 이에 반해서 농토가 협소하고 비농업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이 적합하지 아니한 이유 등으로 군민들이 점차로 정든 고향을 떠나가는 것으로 보아진다. 이런 변화 속에서 3대 감소 대상과 3대 증가대상이 나타나고 있다.3대 감소대상은 군민감소와 군민 소득
여상규의원의 3선, 박성중 의원과 김두관 의원의 당선을 축하하는 바이다. 여상규 의원은 3개 지역의 넓은 공간에 지역민 한사람 한사람의 관심과 지지를 받아 치열한 경쟁 속에서 당선한 것 매우 힘든 일이였는데 그 성공은 지난 18대와 19대 의정활동의 좋은 성적에서 이루어진 지역민의 값진 선물이라 하겠다. 특히 19대 국회의원들의 총체적 의정성적은 전국민들의
말 많은 20대 총선은 국민들의 심판을 받고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정부와 국회가 하는 일에 관해서 언론매체처럼 떠들면서 하고 싶은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국민의 소리를 알리는 언론매체가 국민의 소리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매체는 국민을 대변하는 객관적 매체여야 하지만, 주관에 치우치면 제 기능을 못하는
중앙정부의 공직자, 사법, 입법부의 공직자들은 국가의 지도자다. 지방자치기관의 공직자도 그 지역민의 지도자다. 어떻게 해서 공직자는 지도자냐? 공직기관은 법과 정책을 만들고, 관리와 집행을 하는 권력기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도자는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을 대상의 인물이다. 다른 시각에서 공직자는 국민의 머슴이라고도 한다. 그 뜻은 국민의 세금에서 봉급 받고
중국은 모택동의 공산주의 정치를 해서 장개석 정부를 추방시켰다. 그러나 추방당한 장개석 정부는 대만에서 자유와 경제를 번창을해 공산당이 중국대륙을 위협하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인민이 잘 살아보자는 공산주의 사상과 정치가 무색해지는 상황에서 모택동의 뒤를 이어온 지도자들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외면할 수 없어 정치는 공산주의, 경제는 자본주의라는 이중체제를 도
우리나라의 농업과 농촌상황은 해가 지나갈수록 참담한 상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에 대한 고민하는 자세는 보이지 아니한다. 그 이유를 몇가지로 추측해 보면 첫째, 실망스러운 농촌과 농업의 변화의 흐름에 뽀족한 개선대책을 갖지 못하여 방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지며, 둘째, 정부가 FTA정책을 계속 추진해야만 하는 현실에 농촌과 농업의 비관적 현실
우리나라 농지의 지형조건이 농업국으로서 열악한 여건으로 되어있다. 대부분의 농토는 산악지대, 산간지대, 평지지대로 형성되어 있어, 전체농토의 논면적과 밭면적이 약 반반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런 지형을 따라 대부분의 다수 농가는 산간지대에서 경사진 야산을 개간하여 밭을 만들고, 강과 산골 개울을 따라 논을 만들고, 저수지를 만들어 벼농사를 했다. 우리 농민은
우리나라 농업 입지조건은 열악하다. 평지지대는 전북 일부와 경기도 일부뿐이고, 그외 대부분은 산간지대에 좁은 평지로서, 농가 호당 평균 1정보(3,000평) 규모로 경작하고 있다. 이런 소규모 경영도 폐경지와 휴경지가 늘고 있다. 이런실정에 쌀농사가 주류였다가 쌀소비가 줄어들어, 재고량 증가와 가격 상승은 생산비 상승을 밑돌고 있어, 농민들은 실망하면서 농
거산(巨山) 김영삼 전 대통령은 2번째 크기의 섬 거제도, 그곳도 남해도처럼 조선시대의 유배인물들이 고통 받았던 이름난 섬에서 태어났다. 숙종 왕 때, 노론파 수장 송시열도 그곳에 귀향 갔고, 같은 파 김만중은 남해로 귀향 왔었다. 왕정시대 때 멸시받던 섬사람, 어부의 아들 김영삼은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의 삶의 철학은 유배인물들의 정의와 기개, 부정에 투쟁
조선일보 11월 10일 8면, 남해군에게는 불명예스런 보도가 있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한국에 진출한 외국기업 1,578개 업체를 대상으로 전국 228개 기초자치단체별 투자매력도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항목 2가지를 설정하고, 하나는 지자체행정에 대한 체감도(주관적 만족도)였고, 그 둘은 지자체 조례의 투자 친화도였다. 행정체감도에는 행정규제를 완화해
남해군은 섬(島)이다. 섬이었기에 조선시대에 많은 정객들이 귀양 온 이름난 곳이었다. 조선시대의 많은 당파 조성과 당파싸움이 많은 유배인물을 배출했고, 그 귀양인들이 가난하게 살던 섬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긴 세월을 타고 남해 땅에 깊이 물들어졌다. 예로서, 바른말하는 성격, 아는 척하는 성격, 남의 일에 간섭하는 성격 등이 뚜렷하다고 생각한다. 장점도 있
판서, 서포의 귀양애사(判書, 西浦의 귀양哀史)1. 권좌(權座)순절사 엄친의 의혈(義血)을 받아 현모의 유복자는 병자호란 맞으며국란의 태풍에 세상을 본다요람기 어린 꽃, 찬 서리를 예고 한 듯홀어머니 섭하에 대의(大義) 꿈꾸며스무살 첫 과거, 거울 되어 입술을 깨물었지도전에 성공하여 그 꿈의 길로 터벅터벅 어언, 당상관(堂上官)판서 권좌 어깨를 누르듯 성리
자아(自我)란 “나와 우리”라는 하나의 집단인 것을 말한다. 자아성찰(自我省察)은 상대편을 의식하여 자아의 행동과 존재를 스스로 반성하여 살피자는 뜻이다. 이와는 달리, 타의(他意)에 의해서 자아의 행동을 비판 받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자아에 대한 상대편의 객관적 평가든, 주관적 평가든 자아의 마음은 불쾌해 진다. 그 원인은 성
1950년 6월 25일은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한을 침입하여 전쟁을 일으킨 비극의 서막일이다. 이 남침전쟁을 북한은 남조선이 북조선을 침입한 전쟁이라고 역설(逆說) 했다. 심지어 남한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 동조세력들까지도 북한의 그 선동설을 믿고 동조했다. 그러나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한?러국교가 수교하자, 6.25남침은 스탈린과 김일성의 공동작품인 것
남해군은 어언간에 관광지역이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갖게 한 것 같다. 김두관 전임 군수 재임기에 관광지역화의 계획을 시작하고,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그 계획을 꾸준히 추진한 결과 그 성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 성과의 실상은 자동차와 사람만 번잡하게 남해 도로를 메울 뿐, 그들이 지출한 금전효과나 남해산 상품의 구매효과는 저조한 것으로 나타
추악한 범죄자를 검거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법경찰은 그 범인에게 현상금을 거는 제도가 있다. 멧돼지는 농촌과 농민에게 악한 범죄물이다. 남해군은 섬인데 어떻게 멧돼지가 여기저기에 서식하고 있는가? 혹시나 재래종 집돼지가 멧돼지로 진화한 것인가? 멧돼지뿐 아니라 고라니도 서식하고 있다. 해방 직후 잠깐 동안 멧돼지가 남면 야산에 서식한 예가 있었다. 산골 논의
우리 선대들의 농업은 유기농법이었다. 그 시대는 화학비료가 공급되지 못했고, 농기계도 개발되지 아니 했기 때문에 한우를 역우(役牛)로 이용하여 일석삼조(一石三鳥)의 농업을 경영하였다. 그때의 역우는 농사와 퇴비생산, 늙어지면 팔려서 주인에게 수입을 안겨주는 보석 같은 역할을 했다. 답장농업이 쌀 중심 농업으로 경운기가 등장하고, 화학비료와 농약이 생산되자
최근 대법관 출신이었고, 국민 인권위원장을 역임했던 김영란 교수는 오랜 법관 생활에서 인식하고, 고민했던 우리나라 민·관 유착의 부정부패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실효성 있는 법을 만들어 정부에 제시했다. 정부가 그 법안을 접수하고 만 2년 5개월 만에 국회에서 그 법안을 수정하여 통과시켰다. 우리나라는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발전했고, 선진국(
우리 국민들도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서 철 따라 생산하는 각종 과일을 많이 소비하는 추세다. 그러나 생산여건은 지역의 자연환경에 따라서 생산된 과일의 맛과 경영자의 수지 관계가 다르다. 각종 과일에 대한 서울의 소비자 인식은 많이 발전하고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생산되는 딸기, 수박, 참외 등의 청과일은 지역 생산의 특성이 점차 평준화하고 있다. 그러나 여
유동성 농업환경이란 농촌과 농업환경이 시대 변화의 흐름에 영향을 받아 점차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금번 남해군 농업발전계획안을 접하고, 필자도 미약하나마 전문가적 식견에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농업이 쇠퇴의 길로 걸어왔던 주요인이 관주도의 농정과 농민, 농학자 3자가 합작의 농정을 이루지 못하고 제각기 걸어왔기 때문